유럽불임학회 논의 뜨거웠던 난임 최신연구와 치료사례들
- 시험관아기 시술 냉동보관 배아
- 초고속 쿨링 기술로 손상 없어
- 인위적 호르몬제 사용한 이식은
- 착상 환경 오히려 방해할 수도
- 자연배란주기 시도 땐 성공률↑
- 만성자궁내막염 질환 발견 땐
- 항생제 2주 치료로 임신율 높여
- 마이크로 바이옴 연구도 활발
- 유익균 활용 치료법 개발 전망
임신율 향상을 위한 난임의학계의 치열한 연구와 시도는 어느 수준에 와 있을까. 지난 22일 부산 세화병원에서 이를 확인할 수 있는 발표회가 개최됐다. 최근 오스트리아 빈에서 열린 ‘유럽불임학회(ESHRE) 2019’에서 논의된 난임 관련 최신 연구와 우수 치료 사례를 발표하는 자리로, 학회에 참석한 리오라여성의원 박일해 원장과 세화병원 정수전 원장이 발제를 맡았다. 호르몬 요법 대신 자연배란 주기를 활용한 냉동배아 이식, 만성 자궁내막염 치료로 임신율을 높일 수 있다는 내용을 소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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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세화병원 의료진이 체외수정 시술을 위해 난자채취를 하고 있다. 세화병원 제공 |
■자연주기 냉동배아 이식 임신율↑
일명 ‘시험관아기’라 불리는 체외수정 시술이란 정자와 난자를 몸 밖에서 수정시켜 얻은 배아를 자궁 안으로 넣는 것을 말한다. 약물을 이용해 여러 개의 난포가 동시에 자라도록 하는 과배란 유도 과정을 거쳐 난포가 적당히 크면 난자와 정자를 채취한다. 이를 체외에서 수정시키고 2~6일간 배양한 뒤 이식한다.
배란유도 주기에 바로 이식한다면 신선배아, 수정된 배아를 동결했다가 다른 배란주기에 넣는 것을 냉동배아 이식이라고 한다. 보통 배란유도 주기에 신선 배아이식을 하는데 ▷배아가 남았거나 ▷과배란으로 인한 합병증이 우려되는 경우 ▷이식 전 배아 유전자 검사가 필요할 때 ▷건강 문제로 임신을 미뤄야 한다면 냉동배아 이식을 하게 된다. 배아를 동결보존했다가 이후 적절한 시기에 과배란 유도 및 난자채취 과정 없이 배아를 이식하면서 임신을 시도하는 것이다.
예전에는 냉동배아의 임신율이 다소 낮았다. 배아 동결 때 얼음 결정이 형성돼 배아 질이 많이 떨어졌기 때문. 하지만 초고속 쿨링 기술을 이용한 유리화 동결로 배아를 손상 없이 냉동보관할 수 있게 될 정도로 발전했다. 배양 기술도 향상됐다. 5, 6일째인 배반포 단계까지 키울 수 있게 됐고, 배아 이식 전 유전자 검사를 통해 좋은 배아의 선별이 가능해졌다. 이처럼 양질의 배아를 얻을 기회가 늘었다.
이렇게 좋은 배아를 얻어 이식한다 해도 반복적으로 착상에 실패하는 경우가 있다. 의료계는 원인을 ‘배아와 자궁내막 간의 동기화 여부’에서 찾는다. 배란 이후에는 난포에서 프로게스테론 분비가 증가하며, 이에 반응해 자궁내막이 배아를 받아들이기 좋은 환경으로 변화하게 된다. 이 시기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도달하면 자궁내막은 배아가 착상하기에 ‘딱 맞는’ 상태가 되는데, 이를 배아와 자궁내막 간 동기화라 한다. 하지만 배란유도 주기에는 과배란으로 인해 호르몬이 과도하게 분비되면서 자궁내막의 동기화가 빨리 진행되기도 한다. 수정란이 자궁내막에 도달하기도 전에 자궁내막이 배아가 착상하기 좋은 상태가 된다는 말이다. 좋은 배아를 이식하지만 계속 착상에 실패하는 이유가 ‘타이밍’ 문제일 수 있다는 게 의료계의 판단이다. 이럴 땐 신선배아보다 냉동배아로 이식시기를 미루는 것이 좋다.
냉동배아 이식 땐 에스트로겐과 프로게스테론제를 복용해서 자궁내막의 착상 환경을 만들어 배아를 이식하는 ‘호르몬 치료’가 주로 시행되는데, 최근에는 이런 인위적 호르몬 요법이 자궁내막과 배아의 동기화를 방해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호르몬제를 쓰지 않고, 자연배란 주기에 맞춰 냉동배아를 이식하는 방식이 임신 성공률을 높인다는 연구결과가 계속해서 발표된다.
■자궁내막염 반복 유산 원인일 수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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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2일 세화병원에서 열린 난임 관련 최신 연구와 우수 치료 사례 발표회. |
만성 자궁내막염은 자궁내막 표면에 지속해서 염증 반응이 나타나는 질환이다. 가벼운 출혈, 골반통 외 특이 증상이 나타나지 않아 진단이 늦어질 때가 많다. 대개 비정상적인 자궁 출혈이나 난임으로 인해 자궁내막 조직검사를 하다가 우연히 발견된다. 일반 여성의 0.5~15%, 난임 환자의 20%에서 만성 자궁내막염이 진단된다. 이런 만성 자궁내막염이 반복 유산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보고가 나와 주목된다. 반복 유산 및 반복 착상 실패를 경험한 환자에게서 만성 자궁내막염이 발견되면 항생제 치료(2주가량)를 통해 임신율을 높일 수 있다.
이와 관련해‘마이크로 바이옴’연구가 관심을 끈다. 마이크로 바이옴이란 일정한 환경에서 군집을 이루는 미생물의 유전정보를 말하는데, 현재 의학계에선 인간의 몸속에 존재하는 수많은 미생물의 유전 정보 전체를 알아내고자 하는 ‘휴먼 마이크로 바이옴 프로젝트’가 진행 중이다. 우리 몸에서 공생하는 미생물 중 유익균과 유해균 간 균형이 깨져 여러 질병을 야기할 수 있다는 논리로, 실제로 비만이나 궤양성 대장염, 아토피 피부염, 자가 면역질환, 우울증 등 다양한 질병과의 연관성이 밝혀지고 있다.
이번 유럽학회에서 반복 유산을 경험한 환자의 자궁강 내 마이크로 바이옴이 그렇지 않은 여성과 다르다는 연구결과가 발표됐다. 자궁내막염 환자에게서 병원균이 증가할 뿐 아니라 정상적인 유익균 비중은 낮은 것이 관찰됐다는 보고가 나왔다. 반복 유산이나 만성 자궁내막염 환자에게도 호르몬제나 항생제 외 유익균을 이용한 치료 가능성이 열린다는 의미다.
이선정 기자 sjlee@kookje.co.kr
도움말=리오라여성의원 박일해 원장·세화병원 정수전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