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움말 = 유준호 인창요양병원 가정의학과 과장]
< 입맛 없으신가요? 소일거리 찾거나 산책해보세요 >
- 노인들 여름철 식욕감퇴 극복 -
- 집 안에 계속 있으면 무기력해져
- 소화기능 줄어 영양불량 위험도
- 심하고 지속 땐 적절한 치료 필요
"어머님 조금이라도 잡숴보세요. 며칠째 통 못 드셨잖아요." "애미야 입맛이 영 없구나."
무더위에 며칠째 입맛을 잃은 80세 시어머니를 보며 근심에 잠긴 주부 김모(50) 씨. 주변에서 효부로 알려진 김 씨는 평소 시어머니가 좋아하는 찬을 골라 이것저것 만들어 식탁에 올려보지만 오늘도 시어머니는 서너 술 뜨고는 입맛이 없다며 물러앉는다.
'이러다가 쓰러지거나 큰 병이라도 나면 어쩌나.' 걱정 반 두려움 반으로 김 씨가 재차 권해보지만 노인네의 고집은 아주 완강하다. '휴, 어디가 편찮으시면 병원에라도 모시고 가겠는데…. 입맛이 확 도는 약은 어디 없나.'
여름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은 젊은이들도 입맛을 잃기 쉬운 계절. 신진대사가 활발하지 않은 노인들은 그래서 식사에 아주 어려움을 겪는다.
나이가 들어가면 우리 몸에서는 미각과 후각이 감퇴하게 된다. 미각에서는 특히 단맛, 짠맛을 담당하는 감각이 감소해 '음식이 쓰고 모래 씹는 것처럼' 느껴지게 된다. 맛있는 냄새도 식욕을 자극하는 중요한 요인이지만 후각의 감퇴 또한 먹고 싶은 의지를 감소시킨다. 맛있는 냄새를 맡으면 입안에 침이 고이고 소화액이 자동적으로 분비되는데, 이러한 현상이 줄어들면서 식욕은 물론 소화기능도 함께 떨어지게 된다.
입맛뿐만이 아니다. 음식이 실제로 목구멍을 넘어가면 식도를 거쳐 위에 머물게 된다. 이곳에서 소화액이 분비됨과 동시에 위장이 움직여 음식물을 잘게 부수어 소화되기 쉽게 만들어준다. 위장에서 소화될 준비가 된 음식물은 소장으로 넘어가게 되는데 이것을 '위 배출 시간(gastric emptying time)'이라 한다. 나이가 들면 이 위 배출 시간이 점차 길어지고 음식물이 위장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어나 배고픔을 덜 느끼고 식욕이 떨어지게 된다. 이러한 식욕부진이 계속되면 영양 불량이나 면역력 저하로 이어져 질병에 걸리거나 삶의 질이 떨어지게 된다.
그렇다면 한여름 건강한 식사를 위해 도움이 되는 방법에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몸을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아침식사 후 누워서 TV만 바라보고 있다가는 다음 식사를 위한 식욕이 생길 리 없다. 보행에 무리가 없다면 집 앞 골목이나 근처 동산이라도 한 바퀴 돌아보자. 햇볕을 쬐며 뼈가 튼튼해지는 것은 덤이다. 주의할 점은 정오에서 오후 2시까지의 폭염 시간대는 피해야 한다.
신체활동이 가능하다면 주민센터에 문의해 소일거리로 적당한 노인 일자리에 지원해 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주 10~15시간가량 신체활동을 하며 약간의 수입도 얻을 수 있다. 함께 일하러 나온 동년배들과 말동무도 되고 아들딸 및 손주 자랑도 하면 정신건강에도 좋고 시간도 잘 간다. 물론 과도하게 자랑하면 한턱을 내야 하니 적당히 해야 한다.
취미생활이나 복지관 등의 활동에 주 2, 3회 참여해볼 수 있다. 노래교실에 가서 요즘 인기 있는 '내 나이가 어때서'를 목청껏 부르고 나면 10년은 젊어지지 않겠는가. 동네 한 구석에 숨겨진 텃밭을 찾아 상추나 고추밭을 일궈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텃밭이 없으면 베란다 한 귀퉁이라도 괜찮다. 건강이 허락한다면 낚시나 가벼운 등산, 게이트볼 등의 활동에 참여해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이러한 바깥 활동조차 어려울 정도로 쇠약해진 노인도 있다. 이들은 이미 일상생활에도 지장이 생긴 것이다. 이런 경우라면 초기부터 적극적인 의료적 개입이 필요하다.
우리나라는 집에서 오래 모셔온 노인의 기능 감퇴를 어쩔 수 없는 노화현상으로 생각해 비교적 오랫동안 두고 보는 경향이 있다. 지금 이 순간부터라도 단기간 수액공급이나 경구 보조제 등으로 쇠약해진 체력을 보강해 다시 건강한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도움을 받도록 하자.
또 식욕부진이 장기간 이어지는 경우 몸 안에 질병이 있을 수도 있으니 병원을 찾아 진단 및 증상치료가 필요할 수 있다. 치매, 우울증 등 '마음의 병'도 최근 약물치료 반응이 좋으니 손 놓고 기다리지만 말고 조기에 치료받는 것이 건강한 생활을 신속히 되찾는 지름길이다.
얼마 전 TV 모 프로그램에 철학자이자 연세대 명예교수 김형석(96) 씨가 출연해 '나는 아직도 일하고 싶다'라는 주제로 이렇게 강연해 감동을 안겨줬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다면 삶의 의미는 없으며, 사는 동안 다른 사람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을 주며 살고 싶다."
유준호 인창요양병원 가정의학과 과장은 "가족들의 도움도 중요하지만 무엇보다 무더위를 이기고 건강하게 이번 여름을 보내겠다는 노인들의 적극적인 삶의 태도가 더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2015년 7월 28일 국제신문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