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봄 모 대학병원에 간호사로 취업한 김모(여·23) 씨. 보름 남짓 출근하다 갑자기 찾아온 변비로 며칠을 전전긍긍했다. 심한 항문 통증과 함께 이틀 연속 변기에 피를 쏟자 바로 대장항문전문병원을 찾았다. 만성치열과 혈전을 동반한 치질 탈출이었다. 고3 때도 이런 적이 있었지만 이번처럼 아파보기는 처음이었다. 김 씨는 당일 수술받고 퇴원, 지금은 씩씩하게 일하고 있다.
첫 출근을 하는 새내기들은 낯선 환경에 적응하느라 정신이 없다. 바쁜 업무에 끼니를 거르기도 하고 잦은 회식까지 겹쳐다 보니 변보는 타이밍을 놓치기 일쑤다. 설상가상으로 상사 앞에서 방귀를 참다 부글거리는 배를 붙잡고 화장실을 찾았건만 거기서도 행여 인기척이 있으면 고약한 방귀나 냄새가 진동할까봐 시원하게 변을 보지 못한다. 새학기를 시작하는 소심한 성격의 학생들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 20대 직장여성에게 최근 빈발
스트레스, 과음·과식, 수면 부족, 무리한 다이어트와 함께 심한 변비 때문에 생기는 대표적 항문질환이 바로 치열(痔裂)이다.
부산항운병원 황성환 원장은 "매년 봄이면 새내기들이 항문의 대표적 3대 질환(치질·치열·치루) 중 하나인 치열 때문에 고생하는 경우가 의외로 많다"고 말했다. 편안한 환경이 돼야 비로소 항문을 열고 변을 보는 사람이 낯선 환경에 접하면 타이밍을 놓쳐 변을 보지 못하는 수가 있다는 것이다.
대장의 끝부분인 직장에 변이 오래 머물면 수분이 말라 항문 쪽에 있던 끝변은 딱딱해진다. 이때 무리하게 힘을 주면 항문이 찢어지고 피가 난다. 찢어진 통증 때문에 괄약근(항문 조임근)은 더 긴장하게 되고, 이때 설사라도 만날라치면 증상은 더 악화된다. 대개 10대 중반에 생기기 시작하는 치열은 초기에 잘 낫지만 자꾸 재발하면서 만성 치열로 발전한다. 최근 20대 직장 여성에게 폭발적으로 늘고 있으며, 드물지만 소심하고 예민한 남성들에게도 생긴다.
치열이 심해지면 항문에 반복되는 자극으로 염증성 혹이 생기고 항문이 좁아져 변을 보기 힘들어진다. 항문 안에서 생긴 혹이 밖으로 튀어나오기도 한다. 더 악화되면 변을 볼 때마다 안쪽으로 밀어 넣어줘야 편해진다. 한 번 혹이 생기면 없어지지 않고 컨디션이 나쁠 땐 어김없이 다시 튀어나온다. 이런 악순환으로 항문관의 과긴장이 오래되면 괄약근은 염증으로 딱딱해져 항문이 더는 이완되지 않고 손가락 하나 겨우 들어갈 정도로 좁아진다. 때론 염증이 심해져 고름집이 생기고 이게 터지면서 치루(痔漏)로 진행되기도 한다. 치열의 진단은 손가락을 항문에 넣고 하는 직장수지검사나 항문경 검사로 확인 가능하다. 항문 직장압 검사가 필요한 경우도 더러 있다.
급성 치열은 수술 대신 보존적 치료로 해결된다. 변비를 없애고 항문을 편하게 해 더는 상처에 자극이 가지 않을 경우 7~10일 정도면 저절로 낫는다.
■ 규칙적 식생활 습관으로 고쳐야
변비를 고치기 위해선 규칙적인 식생활 습관과 충분한 수분 섭취가 필수다. 급만성 변비는 해결하기가 쉽지 않아 병원에서 제품화된 식이섬유나 배변 완화제를 처방받는 것이 좋다. 변을 본 후 연고를 발라 붓기를 가라앉히고 반신욕을 자주하며 청결을 유지하면 항문은 자연히 얌전해진다. 치열로 고생하는 새내기라면 회식 때 "엉덩이가 아파서…"라고 솔직히 털어놓고 술을 자제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수술이 불가피한 경우도 있다. 다량의 출혈이 지속된다든지, 항문 괄약근이 노출돼 있는 경우, 극심한 통증이 동반되거나 돌기가 튀어나온 경우, 항문이 좁아져 변을 보기 힘든 경우 등이 그것이다. 치열 수술은 병소를 제거하고 괄약근의 긴장을 줄여주는 간단한 수술이다. 입원하지 않아도 되는 경우도 많지만 심한 치질이 동반될 땐 며칠씩 입원해야 한다.
치열은 항문의 앞·뒤쪽으로 많이 생기지만 방향을 가리지 않고 다발성으로 생기는 경우도 더러 있다. 이런 경우 일반적인 치열로 간주해 괄약근 절개를 하게 되면 의외로 항문이 빠져버리고 변실금(便失禁)이 오는 수가 있다. 이럴 땐 보다 다양한 항문 직장의 기능검사를 통해 숨어있는 병변을 찾아 교정해 주어야 한다.
변을 가리기 시작하는 2~4세 여아들에게 생기는 치열도 있다. 이는 성인의 치열과는 발병 기전이 좀 다르다. 항문이 원래 좁아 물총 쏘듯 설사를 보기도 하고, 변이 너무 굵어 얼굴이 벌게지도록 변을 보지 못하고 울기만 하기도 한다. 심한 경우 손가락으로 파내기도 한다.
때론 항문이 앞·뒤쪽으로 지속적으로 찢어지면서 큰 돌기가 생겨 질과 항문 사이의 피부가 늘어나기도 하고 꼬리뼈 쪽으로 긴 혹이 빠지기도 한다. 대부분은 학동기에 접어들면서 저절로 좋아지기도 하지만 혹이 너무 커 아파하며 항문이 좁은 경우에는 전문의를 찾아야 한다.
# 치열 예방을 위한 7계명
1. 섬유질 풍부한 채소·과일 섭취
2. 반신욕 자주하며 청결 유지
3. 5분 이상 용변 보지 않는다.
4. 규칙적 식생활, 충분한 수분 섭취
5. 면역력에 좋지 않은 음주 자제
6. 자극성·동물성 음식 피해야
7. 장시간 앉아 있을 때 스트레칭
2015년 3월 31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