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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사 4인의 사색의론(四色醫論)] 병원은 비영리조직?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3-05-14 (화) 10:29 조회 : 791


[이은신 세브란스유바외과 과장]

현재 세계적으로 치료와 연구를 선도하는 병원으로 미국의 존스 홉킨스 병원이나 엠디앤더슨 병원을 꼽을 수 있다. 두 병원의 이름을 보면서 김OO병원이나 이OO병원에 익숙한 우리로선 당연히 유명한 존스 홉킨스 의사나 앤더슨 의사가 세운 병원이라고 생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이들은 의사도, 경영자도 아닌 병원을 세우도록 재산을 기부한 사람들이다.

이들이 의학의 발전과 연구를 부탁하며 재산을 기부했고 그 기부금을 토대로 병원이 설립됐으며 점점 성장하여 지금은 처음 기부금으로는 상상할 수 없는 규모의 병원, 그리고 무엇보다 그들의 바람대로 환자를 위해 최선의 진료를 하는 병원으로 성장했다. 이들 병원은 지금도 재력가들 뿐 아니라, 진료를 받은 환자들과 수많은 일반 시민의 기부금이 운영비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할 정도로 많다고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나라의 가장 유명한 병원에는 우리나라 최고 기업의 이름이 붙어 있다. 법적으로 병원은 비영리조직으로 되어 있기 때문에 이윤을 목적으로 운영할 수 없다. 그러나 실제로 병원을 비영리조직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될까? 그러니 사실상 영리 조직인, 그것도 우리나라에서 최고 재벌로 인식되는 어떤 기업 소유의 병원에 기부를 한다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인 것이다.

이런 인식은 비단 기업이 운영하는 병원 뿐 아니라 대학병원, 개인 병원 모두를 막론하고 마찬가지다. 의료가 사람을 위한, 생명을 구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돈을 버는 한 직업이나 기업, 혹은 장사쯤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의료의 발전 없이는 아무리 지위가 높고 돈이 많아도 생명을 연장하거나 병의 고통에서 해방될 수 없다. 이러한 발전을 위해서 병원은 훌륭한 의료진과 기술과 설비, 그리고 연구와 교육을 할 수 있는 환경을 갖추어야 한다. 그리고 발전된 의료의 혜택은 지위고하와 재산여부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에게 돌아가야 한다는 것에 이견이 있을 수 없는 분야가 바로 의료이다.

사보험 등으로 항상 시끄러운 미국이지만 병원이 사람의 목숨을 살리는 소중한 기관이라는 인식이 있기에, 자신이 받은 의료에 진심으로 고마워하기에 기부를 할 수 있는 것이다. 환자가 병원의 수익을 올려주는 '손님'일 뿐이며 고액의 병원비 영수증을 보며 "병원은 다 도둑"이라고 외치는 모습을 더 이상 보지 않으려면 병원은 환자를 소중한 생명으로 인식하고, 사람을 위한 진료를 하며, 환자는 그 진료에 진심으로 기뻐하고 고마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되길 바란다.

마지막으로 의사 한 명이 하루에 10명 이하의 환자만을 진료하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는 존스 홉킨스 병원에서 의과대학 학생시절부터 가르치는 말을 마음에 담아본다. '환자 없이 세계 최고의 기술이 존재하지 않으며, 의사들이 기술에 자만할 때 세계 최고는 물거품이 된다'라는. 이것이 그들을 세계 최고로 만드는 이유일 것이며 의사와 병원이 고마움과 존경의 대상이 되는 이유일 것이다.


2012. 09. 25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