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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나도 디스크 환자였다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6-03-29 (화) 10:21 조회 : 617


[김훈 세바른병원 병원장·신경외과 척추전문의]


< 나도 디스크 환자였다 >

수년 전 어느 날 아침 허리에서 묵직한 통증이 감지됐다. 엉덩이에서 다리 바깥쪽으로 불쾌한 자극도 느껴졌다. 단순 요통이 아니라는 생각에 침대에 누워 다리를 살짝 들어보니 힘들었다. 바닥에서 15㎝쯤 올렸을 땐 당기고 저리는 느낌마저 들었다. 

디스크는 척추를 다루는 의사들에게도 많이 나타나는 직업병이다. 수련기간 동안 환자를 수술대로 옮기는 작업부터 장시간의 수술까지 수년간 허리를 혹사시킨다. 신경외과는 타과에 비해 중환자 비율이 높아 스트레스도 높다. 허리에 안 좋은 여건을 두루 갖췄다. 

일단 고통을 줄이기 위해 서둘러 치료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척추 치료의 경우 참고 견디는 것은 좋은 방법이 아니다. 디스크는 자연 경과가 좋은 조직이지만 이를 기대하며 치료를 미루기에는 무리수가 너무 많다. 

우선 극심한 고통 감내. 디스크 환자 중에는 통증 때문에 매사에 짜증을 내고 우울증에 시달리는 이들이 많다. 현실적으로 수개월간 회복되기를 기다리며 쉴 수 있느냐 하는 것도 고려 대상이다.

빨리 치료받기로 결심했다면 남은 것은 '어떤 치료법'으로 '누구'에게 맡길 것인가를 결정하는 일이다. 나의 경우 당시 40대 초반이라는 나이와 고혈압·당뇨와 같은 만성질환이 없다는 점에서 수술에 대한 부담은 크지 않았다. 하지만 수술의 경우 일단 피부를 절개해야 하기 때문에 정상 조직에 피해를 줄 가능성이 크다. 디스크라는 조직은 피부, 근육, 인대, 신경의 안쪽에 위치해 있기 때문이다. 수술을 하면 짧게는 2, 3일 길게는 일주일 이상 병상에 누워 회복을 기다려야 한다.

나는 카테터를 척추 안으로 밀어 넣은 뒤 고주파열로 디스크를 쏘아 용적을 줄이는 고주파수핵감압술을 택했다. 튀어나온 디스크의 용적이 줄면서 통증을 유발하는 신경 압박을 줄이는 시술이다. 오후 진료를 마치고 30분 정도 시간을 내 수술실로 향했다. 막상 수술대에 누우니 몸이 굳어졌다. 타인에게 신체를 맡기는 데 두려움을 느끼지 않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나 역시 수술대에 누우니 환자의 마음이 됐다.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아챘는지 동료 의사가 말했다. "긴장을 풀고 편안하게 마음을 가지세요. 시술 마치면 허리통증과 다리 당기는 증상이 금방 좋아질 겁니다." 내가 늘 하던 말이지만 입장 바꿔 들으니 마음이 안정됐다. 잠시 후 좋은 결과가 기대된다며 나를 일으켜세웠다. 20분만이었다. 진료실로 돌아온 나는 차 한 잔을 마신 후 평소처럼 저녁 회진을 돌았다.

의사로서 자신의 몸을 잘 돌보지 못한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들기도 했지만 환자들이 시술이나 수술을 망설일 때 나는 서슴없이 내 경험담을 꺼낸다. 이심전심이랄까. 마음을 당최 열지 않던 환자들은 십중팔구 마음을 열었다. 흔히 좋은 치료란 몸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료하는 것이라고 한다. 혹여 척추치료에 대한 잘못된 선입견 때문에 치료를 미루는 환자가 있다면 지친 심신까지 치유할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해주기를 바란다.


2016년 3월 29일 화요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