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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장 약해진 중년 ‘약 정리’ 필요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4-12-16 (월) 14:30 조회 : 9


손변우 동의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


진료 중 어떤 환자에게서 이런 말을 들었다. 다른 병원에서 “이건 낫지 않는 병이니, 그냥 그렇게 사셔야 해요. 약 드릴게요”라고 했다는 것이다. 사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아픈 환자에 의사로서 어떻게 설명하고 안심시켜 드리는지가 치료의 중요한 시작이라고 말해줬다. 낙담한 채 지내던 그 환자는 필자의 설명을 듣고 한결 가벼운 마음으로 되돌아갔다.

필자는 환자의 증상과 평소 생활습관을 들어보고, 여러 증상과 함께 공통된 원인을 살펴 그 증상들이 어떤 과정으로 발현되었는지, 어떻게 스스로 생활습관을 개선할 수 있는지, 또 침술을 어떻게 쓸지, 한약으로 다스릴지 등 한의학적 치료 계획을 함께 설명한다.

노년 인구가 많아지면서 최근 ‘노년내과학’이라는 진료 영역이 등장했다. 나이가 들수록 아픈 곳이 많아지면, 약의 숫자도 하나씩 늘어난다. 이 약의 숫자와 세기를 세밀하게 조절하는 게 중요하다. 젊고 건강할 때는 약이 많더라도 큰 문제가 없다. 그래서 약이 온전하게 효과를 내지만, 나이가 들면 위장이 약해지고 약을 대사시키는 기능도 떨어진다. 이는 소아와 임산부에 약을 조심해서 쓰는 것과 비슷한 이치다.

현행 우리나라의 의료체계상 의사가 다른 병원의 처방약을 알 수는 없다. 같은 병원에서 처방한다면 다른 진료과의 처방이라고 해도 이를 참고해 중복되지 않게 처방하기도 하지만, 대부분 과별로 필요한 약을 처방한다. 때로는 한 가지 증상에 중복 처방하기도 하고, 같은 작용을 하는 약이 겹치기도 한다.

필자는 소견서와 처방전을 살펴보다가 중복되는 약이 있거나, 환자의 몸 상태와 소화력에 비해 약이 세게 처방돼 있을 때는 처방을 받은 해당 과에 약 조절을 요청하라고 조심스럽게 환자에 권한다. 중·장년 환자를 많이 진료하는 필자는 20여 가지 약을 복용하는 환자를 자주 보는데 이럴 때는 꼭 약을 조절하라고 당부한다. 이를 ‘다약제 정리’라고 하는데, 노년내과학에서 중요한 대목이다.

진료 환자가 복용하는 약이 많을수록, 약을 복용한 지 오래될수록 한약 처방 때 고심하게 된다. 생후 6개월 아기부터, 임산부까지 한약을 복용할 만큼 순한 한약이지만, 꼭 필요한 약재만 적정량을 필요한 기간만 쓰듯, 노인 환자에게는 한약도 순하게 지어드리게 된다.

사실 잠이 보약이고, 밥이 보약이지만, 입맛이 없고 소화가 안 되거나, 잠을 잘 못자는 이들에게는 한약이 체력 회복의 발판이 된다. 몸이 회복되면 여러 불편한 증상도 함께 좋아진다. 이것저것 약을 쓰지 않고, 핵심적인 약만 처방한다.

그렇다면 노년의 건강은 언제부터 챙겨야 할까. 노년은 이미 세월이 많이 흘러서 증상이 고착화된 경우가 많다. 짬뽕 국물이 튄 옷을 곧장 세탁하면 때가 잘 빠지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면 눌어붙어 물에 불리고 세제와 함께 세게 비벼야 때가 빠지는 것과 같다.

중년에는 아직 체력이 있으므로 증상이 나타난 지 얼마 되지 않을 때 충분히 방비할 필요가 있다. 중년 이후의 몸 관리가 중요한 이유이다. 중년에 에너지 소모를 줄이고 체력을 비축하는 생활습관을 개선할 필요가 있다. 이때 한약이 도움이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