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웅진한의원 원장
당뇨 환자들을 진료할 때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선생님, 대체 뭘 먹고 살라는 건가요?” 그 심정을 백 번 이해한다. 한쪽에서는 탄수화물을 줄여라, 다른 쪽에서는 고기를 먹지 말라, 과일도 먹지 말라고 하니 결국, 물만 먹고 살아야 되나 싶은 마음이 들 것이다. 하지만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건 ‘무엇을 먹느냐’보다 ‘어떻게 먹느냐’가 더 중요하다는 것이다.
당뇨는 단순히 설탕만 줄인다고 해결되는 병이 아니다. 내 몸이 어떻게 음식을 받아들이는지를 이해하고 그것에 맞춰 식단을 조절해 나가는 과정이다. 먼저 피해야 할 음식부터 짚어보자. 대표적인 것이 흰 쌀밥 흰 밀가루 흰 식빵 같은 정제된 탄수화물과 떡 도넛 국수 같은 부드럽고 단 음식이다. 이런 음식은 섭취 후 혈당을 빠르게 올리고 금방 배고파져서 다시 음식을 먹게 만든다. 가공식품이나 음료에도 주의해야 한다. ‘무설탕’이라고 적혀 있어도 액상과당, 말토덱스트린처럼 혈당 지수를 높이는 성분이 숨어 있다. 스테비아나 에리스리톨 같은 감미료도 과용하면 단맛에 대한 중독성을 유지하게 한다. 한의학적으로는 이들 음식이 비위를 손상하고 습열을 만들어 당의 대사에 방해가 된다고 본다.
그렇다면 당뇨 환자가 먹어야 할 음식은 무엇일까. 현미 보리 흑미와 같은 잡곡밥과 서리태, 병아리콩은 혈당을 천천히 상승시키고 비장을 보하면서 수분대사를 조절하는 효능이 있다. 도라지 우엉 연근 브로콜리 케일 같은 뿌리채소와 녹황색 채소는 청열해독 작용이 있어 당뇨에 의한 염증성 변화에 도움이 된다. 아몬드 호두 해바라기씨 같은 견과류와 씨앗류는 당의 흡수를 느리게 하고 포만감을 오래 유지하게 한다. 한방에서 권하는 대표적인 식재료는 율무 산약 여주 청국장이 있다. 율무는 비장의 습을 제거해주고 인슐린 저항성을 낮추며, 산약은 위장을 튼튼하게 해 혈당을 완만하게 조절한다. 여주는 혈당 강하 효과로 유명해 차나 볶음으로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청국장은 발효음식 가운데에서도 위장 기능을 돕고 면역을 높여주는 우수한 식품이다.
얼마나, 어떻게 먹는지도 중요하다. 1대 1대 2의 법칙을 기억하자. 단백질 1, 지방 1, 채소 및 복합탄수화물 2의 비율로 식단을 구성하면 이상적이다. 식사 순서도 채소→단백질→탄수화물 순으로 먹으면 혈당 상승이 완만해진다. 조리할 때는 볶거나 튀기기보다 삶거나 찌는 방법이 좋고, 국물은 적게 섭취해야 한다.
당뇨에 도움이 되는 한방 약차도 함께 소개해본다. 여주차는 인슐린 유사 작용을 하므로 당 흡수를 억제한다. 산사차는 혈액순환을 돕고 식후 포만감을 줄이며 기름진 음식 소화를 도와준다. 율무차는 습을 제거하고 비위기능을 강화하는 한편 붓기 조절에 효과가 있다. 약차는 식후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좋으며 체질에 따라 선택해야 한다. 예를 들어 여주는 찬 성질이 있어 냉한 체질이라면 주의가 필요하다. 당뇨병은 약만으로 다스릴 수 없다. 생활이 곧 약이다. 식단 운동 수면, 스트레스 관리가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몸이 회복된다. 오늘 저녁 식단부터 한번 바꿔보자. 그 작은 변화가 혈당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