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연일 이어지는 폭염으로 일사병과 열사병 등 온열질환 환자가 늘어난다. 일사병은 강한 햇볕이나 고온 환경에 장시간 노출돼 체온 조절 기능이 저하되고 탈수가 발생하는 질환으로, 두통과 어지럼증, 갈증, 피로감, 과도한 발한 등이 대표적인 증상이다. 적절한 휴식과 수분 보충으로 회복되는 예가 많지만, 치료가 늦어지면 의식장애와 고열을 동반하는 열사병으로 진행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특히 노인은 온열질환에 더욱 취약하다. 나이가 들수록 땀 분비와 체온 조절 기능이 떨어지고 갈증을 느끼는 능력도 둔화돼 탈수가 쉽게 발생한다. 여기에 고혈압 당뇨병 심장질환 등 만성질환과 복용 중인 약물이 영향을 미치면서 위험성은 더욱 커진다. 어지럼증이나 무기력감을 단순한 노화 현상으로 여기고 치료 시기를 놓치는 사례도 적지 않다. 혼자 생활하는 노인들은 증상을 스스로 인지하지 못하거나 주변의 도움을 받지 못해 상태가 악화할 가능성도 있다.
더위로 인한 질환은 현대 의학만의 개념이 아니다. 허준은 동의보감에서 여름철 더위로 생기는 질환을 ‘중서(中暑)’ 또는 ‘서병(暑病)’으로 설명했다. 동의보감에는 ‘暑有冒暑 中暑 傷暑三證(더위로 생기는 병에는 모서, 중서, 상서의 세 가지가 있다)’이라고 기록돼 있다. 이어 ‘身熱 胸滿 煩渴 引飮 頭痛 自汗 面黃 是暑病也(몸에 열이 나고, 가슴이 답답하며, 갈증과 두통이 있고 땀이 나는 것이 서병이다)’라고 증상을 설명한다. 이는 체온 상승과 갈증 두통 발한 등 오늘날 일사병의 주요 증상과 상당 부분 일치한다.
허준은 여름철에는 더위로 인해 기(氣)와 진액(津液)이 쉽게 소모된다고 보고 이를 보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원칙에 따라 생맥산과 청서익기탕 등의 처방을 활용해 더위로 떨어진 기운과 체액의 회복을 돕고, 환자의 체질과 전신 상태를 함께 고려한 치료를 시행한다. 한의학에서는 같은 더위에 노출되더라도 누구는 쉽게 지치고 어지러운 반면 누구는 비교적 잘 견디는 이유를 개인의 체질과 더불어 몸속 기와 진액의 상태에서 찾는다. 여름을 맞을 때마다 유난히 더위를 타고 땀을 많이 흘리거나 기력이 떨어진다면, 후에 일사병이 나타난 뒤 치료하기보다 한의원에서 자신의 몸 상태를 살펴보고 여름철 건강관리법을 미리 상담해보는 것도 한 방법이다. 특히 고령자는 체력 저하와 식욕 감소, 만성질환이 함께 나타나는 예가 많아 개인의 건강 상태를 종합적으로 살펴 치료 방향을 결정한다. 한방 치료를 통해 증상 완화뿐만 아니라 더위로 저하된 체력을 회복하고 여름철 컨디션을 유지할 수 있다.
폭염은 이제 일시적인 이상기후가 아니라 매년 반복되는 여름철 건강위험으로 자리 잡았다. 더위를 마냥 견디는 것보다는 충분한 수분 섭취와 시원한 실내 환경을 유지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 피로감과 어지럼증, 식욕 저하 등의 초기 증상이 나타난다면 방치하지 말고 의료진과 상담해 적절한 치료를 받는 것이 바람직하다. 여름 건강을 지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증상이 심해진 뒤의 치료가 아니라, 일사병을 예방하고 초기에 관리하려는 꾸준한 실천에서 시작된다.
강병령 광도한의원 대표원장·한의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