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내가 치매 환자를 가까이서 보게 된 건 안타깝게도 우리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당시 우리집에 머물던 할머니는 뇌졸중 파킨슨병으로 몸이 불편한데도 매일 일찍 일어나 청소할 것도 없는 방을 닦기 시작했고, 당신이 머무는 곳이 어딘지 몰라 집에 가겠다고 했으며, 질문에 엉뚱한 대답을 했다.
우리나라 65세 이상 인구 10명 중 1명은 치매 환자일 만큼 치매는 흔한 질병이다. 치매의 가장 많은 비율을 차지하는 것이 알츠하이머병이다. 알츠하이머는 알츠하이머병을 보고한 독일의 정신과 의사(알로이스 알츠하이머·1864∼1915)의 이름이다. 그는 인지장애를 보이던 50대의 젊은 여성 환자가 숨진 뒤 뇌 조직을 부검했고, 뇌 피질의 위축과 비정상적인 단백질의 침착이 있음을 알게 됐다. 알츠하이머병 환자의 뇌 자기공명영상(MRI)을 보면 측두엽 내측 깊숙한 곳의 해마 영역을 비롯해 전반적으로 뇌의 위축이 많이 진행된 것을 볼 수 있다. 뇌의 해마 영역에서는 새로운 기억을 저장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치매 환자는 해마의 신경 세포들이 없어지면서 현재 상황에 대한 새로운 기억을 형성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 이는 치매 환자가 어제 무엇을 했는지, 지금 여기는 어디인지 혼란을 겪게 되는 주요 원인이다. 치매 환자는 가족을 알아보지 못하거나, 오래전 기억들도 점차 잃게 되고, 뇌의 전반적인 기능이 모두 저하되면서 일상 생활이 어렵게 된다. 치매는 환자 자신과 주변에 대한 기억을 점차 잃게 만들므로 ‘존재’ 자체에 대한 위협으로 다가온다. 한의학에서는 오래전부터 우치(愚痴), 문치(文痴), 무치(武痴) 등으로 기억력 저하나 정신 기능 저하에 대한 의학적인 설명을 했다. 명나라 장개빈(張介賓·1563∼1640)이 경악전서(景岳全書)에서 ‘치매’라는 병명을 처음 사용했다. 한의학에서는 예전부터 치매의 원인을 뇌수의 부족(뇌의 위축)이나 담의 축적(비정상적 단백질 침착)으로 보고 보신(補腎), 보심(補心), 개울(開鬱), 축담(逐痰) 등으로 뇌의 혈류를 개선하고, 뇌의 염증을 제거하고, 뇌의 신경을 보호하는 치료를 해왔다.
80대 여성이 병원에 왔다. 치매와 우울증으로 신경과와 정신건강의학과의 처방 약을 복용하고 있었으나, 주변 사람을 알아보지 못하고, 화를 내거나, 물건을 훔쳐 갔다고 의심하는 등 증상이 개선되지 않는다고 한다. 침 치료나 사향 약침 치료 등 뇌의 혈류를 개선하고 뇌의 신경을 보호하는 치료를 하면서 점차 화가 감소하고, 온화해졌으며, 공원에서 걷기도 하는 등 호전을 보였다. 치료가 진행되면서 기억력도 좋아져 병원 가는 날을 기억하고 스스로 일어나 머리를 감고 준비하는 태도를 보였다. 식사를 손수 차려 먹거나 집에 가족이 없어도 찾지 않는 등 이전과 달리 기억력과 인지, 운동 및 행동심리증상이 확연히 좋아졌다. 치매는 점진적으로 악화하며 치료 방법이 마땅치 않다고 알려졌지만, 경우에 따라 뇌 순환을 개선하고, 뇌의 신경을 보호하는 여러 한의학적 치료를 통해 증상이 완화되기도 하고, 인지나 운동 능력 또는 가족을 괴롭히는 여러 행동심리증상이 호전되는 예가 많다. 그러므로 치매를 진단받았다고 해서 미리 포기하지 않았으면 한다.
진명호 동의대한방병원 한방내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