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주현 웅진한의원 원장
얼마 전 진료실에 한 중년 여성 환자가 찾아왔다. “원장님, 피부는 멀쩡한데 너무 가려워요. 심할 땐 긁다가 잠도 못 자요.” 그는 여러 병원을 다녔지만, 특별한 피부 질환이 아니라며 보습제만 권유받았다고 했다. 그런데 한방적으로 접근해 보니 원인이 보이기 시작했다.
가려움증(소양감)은 단순한 피부 문제가 아닐 수도 있다. 서양의학에서는 피부 건조증, 알레르기, 간, 신장, 갑상선질환, 당뇨병, 심지어 신경성 원인까지 다양한 가능성을 고려한다. 검사해도 특별한 이상이 없으면 원인 모를 가려움증이라며 대개 보습제나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한다. 그런데 그 효과는 미미한 예가 많다.
이와 달리 한의학에서는 가려움증을 ‘풍(風)’의 문제로 본다. 풍은 움직임이 많고 변덕스러운 기운으로, 몸속 기혈 순환이 원활하지 않을 때 피부로 발현되곤 한다. 예를 들어 혈(血)이 부족하면 피부가 건조해지고 가려움증이 생기는데, 이를 ‘혈허생풍(血虛生風)’이라고 한다. 갱년기 여성이나 수면 부족, 과로한 사람에 이런 증상이 흔하다.
또 몸 안에 습기와 열이 쌓이면 피부로 발산되며 가려움을 유발하는데, 이런 경우를 ‘습열(濕熱)’이라고 한다. 기름진 음식이나 술을 자주 먹거나 소화 기능이 약한 사람에 이런 증상이 많다. 스트레스가 많거나 감정 기복이 심한 사람은 간(肝)의 기운이 막혀 가려움을 느끼기도 한다. “긁을 때만 시원하고 또 가려워요”라는 환자가 여기에 해당한다.
그렇다면 가려움증이 있을 때 병원에 가기 전 집에서 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방법은 있다. 첫째, 뜨거운 물 대신 미온수로 씻는 것이 좋다. 뜨거운 물은 피부를 더욱 건조하게 만들어 가려움 증세를 악화한다. 오트밀이나 한방 입욕제(감초 황백 등)를 활용하는 것도 도움이 된다. 둘째, 한방 진정 팩을 활용할 수 있다. 감초 황백 율무가루를 섞어 팩을 하면 피부 진정에 효과적이다. 셋째, 인공 향료나 알코올이 들어간 보습제 대신 천연오일(호호바오일, 동백오일 등)을 사용하는 것이 좋다. 넷째, 가려운 부위를 무작정 긁기보다는 손끝으로 가볍게 두드리거나 지압하는 것도 피부 손상을 줄이는 좋은 방법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긁지 않는 것’이다.
음식도 중요하다. 혈을 보충해 피부를 윤택하게 하려면 당귀 흑임자 대추 들깨가 좋다. 몸의 열을 내려 가려움증을 완화하려면 결명자차 보리차 오이 연근이 효과적이다. 스트레스성 가려움증이 있다면 매실, 귤껍질(진피) 녹두가 도움이 될 수 있다. 또 장 건강이 나쁘면 피부도 영향을 받으므로 김치 된장 요거트 같은 발효음식을 꾸준히 섭취하면 좋다.
앞서 소개한 중년 여성 환자는 혈허와 간울이 원인이었다. 피로가 쌓이고 스트레스를 받다 보니 몸이 약해져 가려움증이 생긴 것이다. 한약과 생활습관 교정을 병행하자 증상이 크게 완화되었고 몇 달 후에는 더는 긁지 않는다고 했다.
가려움증은 단순한 피부 문제가 아닐 수 있다. 생활 습관과 몸 상태를 돌아보고 필요하면 한의학적 치료도 고려해 보자. 건강한 피부는 결국 몸의 균형에서 시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