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갈증(-)이 나면 물(+)을 먹거든요. 그러면 제로(0)가 돼요. 위기(-)가 있으면 기회(+)가 옵니다. 지구의 모든 존재는 제로(0)에서 시작해요. 우리가 일을 하다 보면 항상 위기를 겪습니다. 위기라는 게, 어떻게 보면 고마운 자극제에요. ‘삼국지’의 조조가 이런 얘기를 했지요. ‘위기 속에는 지혜가 함께하고 기회 속에는 또 화(禍)가 항상 숨어 있다’고. 잘 나갈 때 조심하라고 하잖아요. 내가 어려울 때, 그게 어려운 것보다도, 어떻게 보면 기회를 만들 좋은 기회에요. 제가 겪었지 않습니까. 산부인과, 소아과를 모두 하다가 어려움을 겪자 할 수 없이 하나둘 내려놓다 보니 결국, 난임(시술) 하나 남은 것이죠. ‘결정’의 영어 단어 ‘decision’의 어원은 ‘잘라서 버리다’입니다.”
지난 5일 부산롯데호텔 3층 펄룸에서 열린 국제아카데미 행사 때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이 강연하고 있다. 황예찬 프리랜서
지난 5일 부산롯데호텔 3층 펄룸에서 열린 국제아카데미 22기의 22주차 행사. 이날 ‘Life 생명’을 주제로 강연한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은 40년 가까이 ‘신의 영역’을 엿본 난임 전문의다. 세화병원은 7명의 난임 전문의가 있는, 난임 연구와 시술 하나만 추구하는 곳이다.
이상찬 병원장은 이날 뜻밖에도 질량보존의 법칙, 양자이론법칙, ‘까마귀가 까만 이유’, 북극성과 은하수, 그리고 생명과 죽음 등 ‘철학관’에서 들을 법한 것을 소재로 삼아 강연을 시작했다. 이어 수소 원자, 전자(-)와 양성자(+), ‘신(神)의 입자’ 얘기까지 나온다. 고개를 갸우뚱하는 순간, ‘아하’ 하는 감탄사로 이어진다. 생명의 이야기다.
“생명도 마찬가지에요. 그래서 결론은 뭐냐. 이 지구의 모든 존재는 제로(0)에서 시작됩니다. 전자는 마이너스, 양성자는 플러스, 결국, 제로(0)인 것입니다. 우리 몸의 난자는 플러스, 정자는 마이너스여서, 생명은 제로(0)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제로에서 왔으므로 다시 제로로 돌아가는 겁니다. 생명은 그래서 의학적으로는 치명적인 불치의 성병이지만, 물리학적으로는 무(無)에서 왔으므로 다시 무(無)로 돌아가는 것일 뿐입니다.”
이 병원장은 생명 역시 제로(0)에서 시작한다고 강조했다. 위기와 기회, 절실함과 도전 역시 따지고 보면 모두 제로 베이스다. 이 병원장은 10년 전 술자리에서 건축가인 승효상 이로재 대표가 “항상 경계인이 되자”고 한 말을 한동안 이해하지 못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어느 날 무릎을 탁 쳤다. 이 병원장은 “글 재주도 없는데도 책 두 권을 써냈고, 마감 직전에야 신문사 칼럼 투고를 마쳤을 때 그 말을 깨닫게 되더라. 그것은 ‘절실함”이라고 전했다. 그는 박세리가 1998년 미국 LPGA US오픈에서 맨발 투혼으로 극적인 역전 우승을 거뒀을 때, 수많은 ‘박세리 키드’가 미LPGA를 호령했을 때, 그것은 바로 절실함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절실함은 도전으로 연결되는 까닭이다.
이 병원장은 부산대 의과대학에서 의학박사학위를 받았다. 부산대병원 산부인과 교수, 서울대병원 난임 펠로우, 미국 뉴욕코넬대학병원 초청 난임 펠로우 등을 지냈다. 그는 대한난임학회와 미국난임학회, 유럽난임학회, 일본생식의학회 정회원으로 학회 활동을 했다. 저서로는 ‘세상에 태어나 꽃이 되어라’(2024), ‘쌍둥이를 원하십니까’(2021)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