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경숙 대한웰니스병원 원장]
[동영상] 메디컬로 본 영화 속 허와 실 - 영화 '오! 해피데이'와 치질
- 치질 앓는 여주인공, 화장실 기절은 술 때문 -
영화에서 수많은 병을 소재로 스토리를 만들어 내지만, 그중 공통분모를 꼽자면 아마 시한부 인생이 아닐까 싶다. 길면 3개월에서 6개월이라는 초등학생들도 다 아는 멘트를 의사가 하며 환자를 절망으로 빠트리는 영화 속 설정은 너무나 진부하다. 하지만 결국 이런 낡은 스토리의 영화가 죽음마저도 끝내 끊지 못하는 것이 '사랑'이라는 메시지를 던지며 극장가를 눈물바다로 만들곤 한다.
그런데 2003년 우리가 함께 가슴 아파하기엔 다소 모호한 질병으로 화제가 된 영화가 있었다. 다혈질 치질환자라는 코믹한 설정의 영화 '오! 해피데이'가 바로 그것. 치질 때문에 변을 보다 화장실에서 기절까지 해버린 주인공 장나라의 모습은 관객에게 큰 웃음을 선사했다. 하지만 막상 치질에 걸려본 사람들은 이 남모를 고통에 고개가 끄덕여진다는 사실.
그렇다면 치질이 실제로 사람을 기절까지 시킬 수 있을까. 전문의 관점에서 말하자면 치핵이 직접 기절을 시키는 원인이 되지는 않는다. 하지만 치핵이라는 게 혈관이 늘어나 생기는 혈관 혹이다 보니 변을 힘들게 본다면 혈관이 터져 피가 날 수 있다. 중요한 건 그때 피가 조금 날 수도 있지만, 완전히 쏟아져 나올 수 있다는 점. 심한 하혈로 사람이 기절까지 하는 것은 사실이다. 또 하나는 항문은 아주 예민한 곳이어서 심한 혈전성 치핵이 유발하는 강한 통증 탓에 자율신경계가 자극을 받게 돼 과다한 긴장으로 말미암아 사람이 기절할 수도 있다.
하지만 주인공을 한 방에 KO 시킨 원인이 다름 아닌 술이라면 믿겠는가. 실질적으로 알코올의 효과 중 하나가 혈관을 확장시키는 것인데, 혈관이 확장되면 순환이 잘 안 된다. 특히 치핵은 이미 혈관이 늘어나 있는 상태인데다 알코올이 더 이완을 시키니 순환이 잘 안 되는 피가 그 자리에 멈추면서 엉겨 붙어 혈전이 생기고 이 때문에 혈관이 막혀 치질이 부어오르고 통증을 유발한다. 그리고 과음을 하면 설사를 할 수 있는데 이럴 때 항문이 압력을 많이 받게 되고 또 조직이 약해져 출혈과 부종을 유발한다. 음주가 치핵을 악화하게 하는 것이다.
그럼 영화 속 주인공처럼 치질 하나로 대형사고가 발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 치질은 항문이 압박을 받지 않도록 하는 게 중요하므로 변을 잘 볼 수 있어야 한다. 화장실에 가더라도 신문이나 책을 들고 가는 것은 오래 앉아 있게 만들어 항문에는 가장 좋지 않은 습관이다. 또 피곤하다든지 무리했을 때 좌욕을 해주면 항문 쪽 혈액순환이 잘 돼 치질이 생기는 것을 예방할 수 있다.
'하나가 가면 또 하나가 온다'는 옛말처럼 속썩이던 치질을 떼어낸 덕분에 꿈에 그리던 짝사랑 현준과 사랑을 이뤄낸 주인공. 앞으로는 '해피한' 날들만 있길….
2013. 06. 04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