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은신 세브란스유바외과 과장]
"지난 50년간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구한 주인공은 영화 속의 슈퍼맨이 아니라 안전벨트입니다"라는 라디오 광고를 들었다. 안전벨트를 착용하면서 교통사고 사망자 수가 많이 줄었다고 한다. 안전 운전을 통해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것이 가장 중요하지만 어쩔 수 없는 사고도 있게 마련이다. 안전벨트가 사고를 방지하는 것은 아니지만 사고가 일어나면 우리를 구해 주는 생명의 벨트가 된다.
현대 사회에서 사망 원인 1위는 '암'으로, 사고보다 훨씬 많다. 사망자 4명 중 1명이 암으로 사망할 만큼 많은 수이다. 교통사고 사망자 수를 획기적으로 줄여준 안전벨트처럼 암으로부터 우리를 구해줄 안전장치는 없을까?
의학이 발전하면서 암의 완치율도 많이 상승하였다. 바이러스 감염이 원인인 일부 간암이나 자궁경부암 등을 제외하고는 원인을 밝혀서 암을 예방할 수 있는 방법은 안타깝게도 아직 그리 많지 않다. 이렇게 현대 의학이 암의 발생을 막지 못함에도 암의 완치율이 높아진 것은 조기암의 완치가 많아졌기 때문이다. 즉 초기에 발견되고, 치료를 잘 받으면 나을 수 있는 병이 된 것이다.
사고가 나지 않길, 어떤 병도 나에게는 오지 않길 바라는 마음이야 모두가 같다. 하지만 언제 닥칠지 모르는 일이라면, 특히 암과 같은 '대형 사고'라면 잘 헤쳐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이때 목숨을 구할 수 있는 방법이 조기 발견이고 그렇다면 안전 장치는 바로 정기 검진이다.
유방암/갑상선암 검진과 수술, 치료를 하는 내가 사람들에게 검진을 받지 않는 이유를 물어 보면 가장 많은 대답이 '무서워서'이다. 유방암 같은 큰 병이 발견될까 봐 병원에 오기가 겁이 난다고 한다. 모르는 게 마음이 편하다고도 하신다. 또 많은 사람은 반대로 "난 아프지도 않고, 혹이 만져지는 것도 아니고, 게다가 우리 가족 중에는 암 같은 건 전혀 없는데 왜 검사를 받아야 하죠?"라고 오히려 반문한다.
이런 얘기를 들을 때마다 무서우니 큰 병을 막기 위해 더 조심해야 하지 않느냐고, 병이 있는지 없는지 모르는 채로 사는 건 발전한 의학의 혜택을 전혀 받지 않겠다는 뜻과 같다고, 또 유방암을 포함한 거의 모든 암이 통증 등의 증상이 있으면 이미 초기가 지나 2기나 3기 이상인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대답하곤 한다. 가족력 역시 암의 발병률과 관련은 있지만 안심할 정도의 중요한 원인은 아니다.
사고가 날까 두려워서 혹은 사고가 절대 나에게는 오지 않을 거란 믿음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하지 않겠다는 사람은 없다. 안전벨트를 착용했었다면 큰 해는 막을 수 있었을 거라는 안타까운 기사를 접하듯이 이미 병이 진행된 후에 겪을 후회와 고통을 생각하면 검진이 비용과 노력 면에서도 그리 큰 일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출근하면서 습관적으로 안전벨트를 착용했다면, 그런 마음으로 나와 사랑하는 가족을 위해 습관적으로, 아무 증상이 없어도, 겁먹지 말고 정기 검진을 받아서 큰 병을 막을 수 있길, 그래서 사람의 목숨을 가장 많이 구한 슈퍼맨이 나를 비롯한 의사들이 될 수 있길 기도해 본다.
2012. 07. 10 국제신문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