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연임신은 사람이 원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자연현상의 일부이며, 신의 영역이다. 난임 전문의는 인간의 미약한 힘으로 불손하게 신의 영역에 도전해 최전방에서 싸우는 사람이다. 여기에 시험관아기 시술로 수정시킨 수정란을 인큐베이터에서 키워주는 연구원의 후방 지원이 없으면 싸움은 백전백패다. 진료 스케줄을 잡고, 주사 처방을 설명하며, 환자의 마음을 다스려주는 간호사와 행정 직원의 후방 지원 또한 중요하다. 이 모든 협동작전이 서로 조화를 이룰 때 우리는 임신이라는 신의 영역에 희망을 갖고 들어갈 수 있다.”(86쪽)
세화병원 이상찬(사진) 병원장이 최근 낸 ‘세상에 태어나 꽃이 되어라’(미디어줌)의 일부 내용이다. 지난 2021년 낸 첫 번째 저서 ‘쌍둥이를 원하십니까’(미디어줌)에 이은 저자의 두 번째 책이다.
책에는 저자가 수십 년간 난임 전문의로서 매진해온 ‘역사’가 담겼다. 저자가 갖은 사연을 지닌 난임 부부들을 만나 그들의 마음을 다독여준 기록들이다. 그간 언론을 통해 발표한 생명·건강·일상 이야기들을 모았다. 그래서 저자는 난임 전문의가 ‘심신(心身) 상담치료’의 전문성도 갖춰야 한다고 지적한다. 저자는 “비록 임신과 출산이 자연현상의 일부이자 신의 영역일지라도, 난임 부부와 난임 전문의가 희망을 갖고 서로 신뢰한다면 그 공간에서 임신의 싹을 틔울 수 있다”고 강조한다.
저자는 또 “우리나라에는 생명윤리법에 묶여 난자은행이 없으므로 임신을 절박하게 원해도 다른 사람의 난자를 구할 수 없다. 미국과 유럽처럼 합법적으로 난자를 구할 수 있게 생명윤리법을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저자가 난임 전문의가 된 배경은 뭘까. 그는 자신에 대해 ‘원죄 있는 사람’이라고 고백한다. 정부가 산아제한 정책에 드라이브를 걸던 1980년대 가족협회에 근무하던 저자는 많은 젊은이에 정관수술과 피임수술을 해줬다. 이에 대한 속죄의 마음이 컸다고 한다. 결국, 저자는 부산대병원 교수직을 내려놓고 서울대병원과 뉴욕코넬대학병원에서 ‘시험관아기 및 난임 초청 펠로우 과정’을 연수했다. 이어 1987년 난임 전문병원 ‘세화병원’을 설립한다. 그후 저자는 부산 경남권 최초의 정자은행 운영, 난자 동결, 수정란 동결 등 혁신적인 난임 치료법으로 시험관아기시술 등을 진행하며 수많은 새 생명의 탄생과 함께해왔다. ‘신의 영역’을 엿본 37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