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추 농사를 아무리 열심히 지어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루트가 없으면 수확한 배추는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생산한 배추를 소비자에게 판매를 연결해 주는 중간상인 업자가 돈을 벌 수 밖에 없는 구조이다.
최근에 “세상에 태어나 꽃이 되어라”라는 책을 발간하면서 생산자인 나는 열심히 일만 했으나 나에게 떨어지는 이익금보다 중간 업자인 출판업자와 서점의 이익금이 훨씬 많이 발생했다.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소비자는 생산자를 직접 찾아서 거래하는 구조였다. 택시를 타려는 소비자는 길가에서 손을 흔들어서 생산자인 지나가는 택시를 직접 잡아서 탔다. 소비자인 손님은 생산자인 음식점에 직접 방문해 음식을 주문해 맛있게 먹었다. 소비자는 시장에 가서 장을 직접 보았고 상점에 가서 내가 상품을 직접 보고 샀다. 가게에서 직접 사 온 생수를 무겁게 집으로 들고 가는 일도 흔했다. 이와 같이 소비자는 생산자를 직접 만나 직거래했다.
그러나 코로나19를 겪으면서 우리 사회는 소비자가 생산자를 직접 접촉하지 않아도 중간 IT매체를 통해 원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소비자는 ‘카카오 앱’을 통해 택시를 타게 되었고 ‘배달의 민족’을 통해 음식을 먹게 되었고 ‘쿠팡’을 통해 주문하면 다음 날 아침에 무거운 생수 한 박스가 아파트 입구에 도착하는 시대가 열렸다. 배추 농사를 하면서 생산자가 중간 상인에게 의존하는 시대는 지났다. 이제는 소비자와 생산자를 연결시키는 중간 IT 플랫폼을 가진 업체가 세상을 지배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중간 IT 산업은 데이터를 기반으로 세상을 재편하고 있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중간 IT 플랫폼을 이용하는 과정에서 생성된 데이터는 IT 기업에 가장 강력한 자산이 되어 새로운 독점의 위험성을 초래할 수 있다. 생산자인 배추 농사꾼이 중간 상인을 피하려다가 더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새로운 유통구조를 마주하게 된 것이다.
그동안 소비자인 환자는 생산자인 병원에 방문해 직접 의사를 만나 진료받은 후 진단과 처방을 통해 질병을 치료해 왔다. 생산자인 병원의 의사는 자신의 의학 지식과 임상경험, 그리고 환자의 증상과 검사한 결과인 데이터를 분석해 소비자인 환자의 질병을 치료했다. 하지만 4차 산업시대인 AI 시대를 맞이하면서 그동안 병원이 독점해 온 환자의 증상과 검사 결과의 데이터가 AI를 탑재한 중간 IT 매체와 공유된다면 환자의 진료에 어떤 상황이 벌어질지 우려스럽다.
소비자가 원하는 상품이라는 데이터를 쿠팡과 같은 중간 IT매체에 입력해 물품을 구입하듯이 비대면 진료를 통해 자신의 증상과 검사 결과라는 데이터를 인공지능을 가진 중간 IT 매체에 입력해 진단과 처방을 받으면 전통적인 의료현실에 커다란 변화가 닥칠 것이다. 이러한 변화는 소비자에게는 편리함을 가져다주지만, 생산자에게는 새로운 도전 과제가 될 수 있다.
똑같은 증상이 있어도 질병의 원인은 사람마다 모두 다르므로 진단과 치료가 똑같을 수는 없으며 환자마다 예측 못하는 예외가 있을 수 있다. 따라서 아무리 많은 의학지식이라는 데이터를 분석하는 인공지능이 있어도 더 중요한 것은 환자와 의사간의 신뢰관계이며 사람마다 예외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변수를 미리 예측하는 의사만의 임상경험이다.
청진기 하나로만 진료하면서 명의라는 명성을 떨친 시대도 있었다. MRI로 온몸을 스캔하고 방대한 의학지식의 데이터가 저장된 인공지능의 조언을 참고해 사람마다의 임상경험을 갖춘 의사가 진단과 치료방침을 최종 결정하면 의학은 더 발전할 것이다.
생산자와 소비자, 그리고 중간 IT 플랫폼 기업이 생산적인 조화를 이루게 된다면 아직 경험하지 못한21세기 AI시대를 맞이해 더 좋은 세상으로 진화시키고 발전시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