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
총 게시물 306건, 최근 0 건
   
[메디칼럼] 산재보험, 신청을 늦게 하는 이유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5-04-10 (목) 14:24 조회 : 24

최근 필자가 진료실에서 주로 보는 환자는 업무상 질병으로 산재 신청을 하려는 분들이다. 한 명, 한 명이 절실한 사연을 들려준다. 한 가지 의아했던 점은 병이 발생한 후 몇 년이 지나서야 산재보험을 신청하는 사례가 적지 않다는 것이었다. 필자가 만난 열 명 중 두 명 이상이 병을 진단받은 지 2년 이상, 길게는 3년 이상 지나서 찾아왔다. 오랫동안 참다가 퇴직할 무렵이 되어서야 찾아오는 경우도 많았다. “진단받고 바로 신청하시지 그랬느냐”고 물어보면, 산재보험을 몰랐다거나, 본인이 가입되어 있는지, 혹은 신청해도 되는지 몰랐다고 한다.

사업주의 눈치를 보다가 신청을 미룬 경우도 많다.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2023)가 보고한 김 모 씨(45)의 사례를 보자. 김 씨는 2년 전 작업 중 기계를 조작하다 손가락 골절 사고를 당했다. 당시 회사 측에서는 치료비를 지원해 줄 테니 산재 신청을 하지 말라고 만류했다. 그는 고용 불이익이 걱정되어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도 기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일상생활에 지장이 생겼고, 결국 뒤늦게 산재 신청을 고려하게 되었다 한다.

2023년 기준 우리나라 임금노동자의 산재보험 가입률은 약 2063만 명으로, 대부분의 임금노동자가 산재보험에 가입돼 있다. 하지만 실제로 산재보험을 활용해야 할 사람들은 이를 잘 모른다는 점이 문제다. 이는 신청주의 원칙에 의해 운영되는 현행 제도가 근로자들에게 충분한 정보를 제공하지 못하는 현실을 반영한다.

여러 전문가들이 지적하는 현행 산재보험제도의 문제점 중 신청 과정에서 마주치는 요소를 정리하면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산재보험의 존재 자체를 모르는 근로자가 많다. 특히 영세 사업장이나 비정규직 근로자들의 경우 더 흔하다. 2023년 한국노동안전보건연구소와 노동건강연대의 조사에 따르면, 비정규직 근로자의 51%가 산재보험 가입 여부를 몰랐으며, 영세 사업장 노동자 중 47%가 산재 신청 절차를 알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따라 산재가 발생해도 신청할 생각조차 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한신실 국민연금연구원 연구위원의 연구에 따르면, 경제활동을 하는 50세 이상 중고령자 1501명 중 60.2%가 스스로 산재보험에 가입되어 있지 않거나 적용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했고, 이 중 53%는 스스로 미가입 상태라고 인식했다.

둘째, 산재 신청을 꺼리는 분위기가 만연하다. 많은 근로자는 산재 신청 시 회사로부터 불이익을 받을 것을 우려한다. 고용 관계에서의 불이익, 해고 가능성까지 고려해야 하므로, 산재가 발생해도 개인이 모든 치료비를 부담하는 경우가 발생한다. 셋째, 신청 절차가 쉽지 않다는 점도 문제다. 다양한 서류를 준비해야 하며, 회사와의 관계가 원만하지 않다면 추가적인 전문가의 도움을 직접 받아야 한다. 그 결과, 신청을 포기하거나 미루게 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산재보험 제도의 접근성을 높이기 위한 근본적인 변화가 필요하다. 그중 하나가 병원 신고제도의 도입이다. 즉, 근로자가 병원에서 치료를 받을 때 의료진이 업무상 질병 가능성을 판단해 자동으로 산재보험 접수를 진행하는 방식이다. 근로자가 별도로 신청할 필요 없이, 전문가의 도움을 따로 구하지 않아도 산재 처리가 이루어질 수 있는 제도가 필요하다. 또한, 산재보험 가입 사실을 모든 근로자에게 구체적으로 안내하는 의무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 신규 근로자 교육 과정에 산재보험 안내를 포함하고, 사업주가 가입 여부를 주기적으로 공지하도록 하는 제도적 장치를 효율적으로 설계해야 한다. 더불어, 산재 신청 후 불이익을 방지하는 법적 보호장치도 마련되어야 한다.

산재보험은 최근 가입 대상을 확대하고 있다. 그러나 현재 방식으로는 이러한 혜택의 존재를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활용이 어려운 사각지대를 해소할 수 없다. 산재보험은 노동자가 오랜 시간 노력해 개선한 대표적인 복지 제도다. 확장성도 중요하지만, 현실에서의 작동성, 특히 신청 단계에서의 문턱 개선도 고민해야 한다.


김은아 근로복지공단 창원병원 직업환경의학과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