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환 부산제2항운병원장과 박원욱 박원욱병원장. 두 병원장은 공통점이 많다. 1961년생 동갑내기 친구로, 일반외과(GS) 황 병원장은 대장항문 파트, 정형외과(OS) 박 병원장은 척추 파트의 스페셜리스트다. 실력은 전국구여서 적어도 대장항문과 척추 환자들은 서울에 갈 필요가 없다. 외국 의사들이 배우러 오는 것도 비슷하다. 이제 좀 쉴 법도 한데 여전히 밀려오는 환자들을 외면 못해 병원에서 수술을 제일 많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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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성환 병원장(왼쪽), 박원욱 병원장 |
최근 또하나의 공통점이 생겼다. 30여 년의 진료 경험을 바탕으로 보석 같은 책을 냈다. 황 병원장은 ‘변실금’, 박 병원장은 ‘척추는 휘어져도 마음만은’. 정점을 찍고 원숙단계에 이른 두 병원장의 동료와 환자를 위한 작은 선물이다.
# 황성환 ‘변실금’
- 대장항문 수술 연 2000건 집도
- ‘항문 포럼’ 만든 공부하는 의사
- 사례 중심 변실금 치료서 내놓아
■공부·수술 병행하는 의사
부산항운병원을 부산 유일 보건복지부 대장항문 전문병원으로 키운 황 병원장은 2018년 범내골에 부산제2항운병원을 개원, 여전히 바쁘다. 외형상 병원 경영의 귀재로 보이나 황 병원장은 실은 ‘공부하는 의사’다.
이번에 펴낸 저서 ‘변실금’에는 그 흔적이 살짝 엿보인다. 연평균 대장항문 수술만 2000여 건(하루 평균 6, 7건)을 20년간 지속해오면서도 논문과 학회 초청 강의 및 프레젠테이션이 여전히 진행형이다. 잘 나가는 의대교수도 이보다는 못하리라.
그를 학문의 길로 인도한 계기는 2016년 발족한 ‘영남권 항문포럼(SERAF)’
이다. 뭐든 서울로 가서 배워야 한다는 관행을 깨보고자 황 병원장을 중심으로 영남지역 대장항문 외과 의사들이 만든 학술모임이다. 6년째 접어든 포럼은 한중일 포럼으로 외연을 넓히더니 지금은 이탈리아 홍콩 독일 네덜란드까지 네트워크가 확대됐다. 최신 지견에 수술시연까지 이어지면서 서울지역 의사들도 참석하고 있다는 점은 뿌듯하기까지 하다.
그의 책 제목 ‘변실금’은 자신의 의사와 상관없이 변이 찔끔찔끔 나오는 질환. 일단 걸리면 스스로 위축돼 숨기고 싶은 데다 지금까지 적절한 치료법이 없어 의사들도 적극 대처해오지 않은 것이 그간의 사정이었다. 처음에는 환자를 위한 병원의 변실금 치료 지침서를 만들 생각으로 준비했다. 점점 작업량이 많아 공부를 하면 할수록 한글 참고서적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제법 유명한 영문서적 몇 권은 오래돼 현실에 맞지 않는 데다 끊임없이 발전하는 새로운 치료법을 담지 못했다.
문득 동료들과 공유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참고서적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꼬박 2년을 투자해 완성했다.
책에선 변실금의 원인 기전과 진단, 증상에 따른 다양한 최신 치료방법 등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돼 있다. 무엇보다 30여 년간 애오라지 한 우물을 판 황 병원장의 환자 치료사례와 노하우를 적절히 반영하고 있어 변실금 입문 의료진에게 큰 도움이 될 듯싶다. 후속작도 벌써 계획하고 있다. 올 연말쯤엔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알기 쉬운 변실금’(가제), 내년쯤에는 의사를 위한 사례 중심의 실전 치료법(〃)을 출간할 계획이다.
# 박원욱 ‘척추는 휘어져도…’
- 마음까지 치유한다는 ‘척추명의’
- 수십년간 봐온 사례 자세히 기록
- 척추측만증 환자가 봐도 큰 도움
■척추측만증의 끝판왕
박원욱 병원장은 모교인 부산대병원에서 10년간 정형외과 척추 담당교수를 역임한 후 정형외과 전문병원인 부산센텀병원과 부산고려병원에서 9년간 척추 진료를 맡았다. 의술뿐 아니라 마음까지 치유했던 그는 병원을 옮길 때마다 환자들이 모두 따라오는 따뜻한 의사다. 2000년대 초 KBS 의료다큐 ‘영상기록 병원 24시’에 척추 변형 치료 명의로 가장 많은, 3차례나 소개되기도 했다.
그가 휜 척추를 바로잡는 큰 수술인 척추측만증을 전공하게 된 계기는 의외다. 전문의를 마친 후 임상강사 자격으로 부산대병원에서 수부 및 미세수술을 전공하며 학생들을 가르쳤다. 어느 날 류총일 당시 병원장은 그를 불러 “조만간 교수 TO가 나오는데 척추 전공자를 뽑기로 했다. 척추를 전공하지 않으려면 퇴직하라”고 통보했다. “생각해보겠다”고 답하니 “이 자리에서 결정하라”고 해 3초쯤 뜸들이다 “하겠다”고 대답한 게 지금의 ‘박원욱’을 있게 했다. 당시 부산에선 척추측만증을 치료하지 못해 환자들은 서울로 갈 수밖에 없었다.
척추측만증에 관한 한 세계적 석학인 서울대병원 석세일 교수의 전임의로 1년간 수료한 그는 모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며 수술을 병행했다. 의욕도 대단했다. 국내 최초로 척추측만층 관련 홈페이지를 만들어 유형별로 분류, 사진과 함께 수술사례를 실었다. 알찬 수업준비로 당시로선 파격적인 슬라이드 강의에다 한 학기 강의내용을 홈페이지에 모두 올려놓는 등 상당한 열의를 보였다. 덕분에 본과생들이 뽑는 ‘베스트 티처’로 선정되기도 했다.
책 속의 목차는 무려 23장. 세부 목차까지 합하면 30챕터다. 그만큼 자료가 풍부하다는 의미다. 15년 전부터 구상, 다양하고 특이한 사례를 꾸준히 업데이트한 덕분이다. 척추 전공자나 일반 의사는 물론이고 환자가 봐도 도움이 된다. 한 척추 전문의는 “더 이상 자세하게 쓰는 것이 거의 불가능할 만큼 척추측만증의 끝판왕”이라 평했다.
책 제목은 오래전 환자가 얘기한 내용을 칼럼으로 신문에 쓴 것을 요약한 것이며, 부제 ‘척추측만증을 이기는 삶’은 포털 ‘다음’의 척추측만층 관련 카페 이름이다. 박 원장은 이 카페 회원으로 지금도 회원들과 소통하고 있다.
이흥곤 선임기자 hung@kookj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