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국적 외모의 청년이 진료실에 들어왔다. 서류 상의 업체명, 업종만으로는 무슨 일을 하는지 알기 어렵다.
“무슨 일을 하고 있으세요?” “으음? 일?….하고 이써요~”. 질문을 제대로 이해하는지 의심스럽다. “어디 불편 한 데는 없으셔요?” “좋아요., 괜찮아요~”.
이주노동자들이 하는 일에 대해 파악하기 쉽지 않다. 건강 관련 질문을 하면, 대부분은 아픈 곳이 없고 건강하다는 것을 적극 강조한다. 근로자 특수건강진단, 배치 전 검진에서 만나는 이들은 의사와 면담을 할 만한 한국어 소통 능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많다. 영어를 할 수 있는 경우도 소수이며, 한국인 보호자가 함께 오지 않으면 대화하기 어렵다. 더구나 근로자 건강검진을 직업 유지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일종의 ‘시험’으로 느끼는 것 같아 보인다.
근로자 건강검진은 일하는 동안 겪을 수 있는 위험한 요소들을 점검해 주는 사회 안전망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입장에서는 언어 소통, 고용불안 때문에 검진 제도의 이점을 누리기 어렵다. 위험한 작업장, 단순 업무, 불안정한 일자리에 이주 노동자의 취업이 늘어남에 따라 이들의 산업재해도 빠르게 늘어났다. 우리나라 산업재해 사망자에서 외국인은 2000년에 4%였지만, 2021년에 12.3%가 되었다. 같은 해 전체 산재사망률에 비해 이주노동자의 산재사망률은 6.9배나 높은 셈이다.
지난달 발생한 경기도 화성시 배터리 폭발 사고에서 사망한 노동자 23명 중 17명이 중국인, 1명이 라오스인 이었다. 리튬은 의학 분야에서는 조울증 치료제로 도입되면서 그 독성이 잘 알려져 있는 물질이었다. 약으로 복용 했을 때 독성이 있을 뿐만 아니라 물에 닿으면 수소 가스를 뿜으며 폭발하고, 불이 붙으면 유독 가스를 방출하는 위험한 물질로 보관과 관리가 아주 까다롭다. 이런 곳에서는 사고가 나지 않도록 잘 조치해야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화재가 났을 때 뭘 해야 하고 하지 말아야 하는지, 작업 투입 전에 작업자를 잘 연습 시켜야 한다. 화성시 배터리 폭발 현장의 노동자 중 과연 몇 명이 이런 위험을 알고 있었을까? 이 노동자들이 건강 검진을 받으러 왔다면 나는 과연 의사로서 잘 알려 줄 수 있었을까? 자신이 다루는 것이 리튬 배터리인지 조차 몰랐을 가능성이 크지만, 그 사실을 의사인 내가 알게 되었다 해도 소통이 쉬웠을까? 말이 잘 통하지 않고, 환자도 답변 하기 싫어하는 눈치이니 그냥 보내지 않았을까?
어느 사회나 이주 노동자들이 사회에 정착하기 까지는 많은 허들이 있다. 이들은 주로 위험하고 불안정한 일자리에 들어가게 된다. 우리나라의 1인당 국민소득이 100달러 언저리이던 1960년대에 독일로 떠났던 우리나라 청년들도 바위에 깔려 사망하거나 진폐증의 위험이 높은 탄광에서 어눌한 독일어를 써가며 석탄을 캐었다.
현재 산업안전보건공단이 홈페이지에 제공하는 16개 언어 안전보건교육자료는 필자처럼 여러 업종의 이주노동자를 검진하는 의사에게는 매우 유용한 자료이다. 그러나 이주노동자의 국적이 다양해 지고 취업하는 업종도 여러 가지여서 매 상황에 맞는 외국어 산업안전보건 교육 자료를 매번 신속히 공급하는 것은 쉽지 않다.
화성시 리튬 폭발 사고 이후 어느 날, 언제나 그렇듯 영어가 되지 않는 이주노동자를 맞았다. 약간의 한국말을 하는 중국인이지만 업무 내용을 파악하기는 어려운 수준이었다.
“어서 오세요, 무슨 일 하셔요?” “?!@#&&*@***@&^%$(중국어)”. 핸드폰 음성 번역 어플을 켰다. “금속 볼트를 상자에 옮겨 담아 적재하는 일을 합니다”.
오? 이걸 이용하면 대화가 되는구나! 시간은 걸렸지만 위험 요인을 간단히 알려주고 아픈 곳도 물어 볼 수 있었다. 어쩌면 이주 노동자와의 의사소통은 기술력이 해결해 줄 수 있다는 희망을 가져본다. 이주 노동자가 우리 사회의 일원이 되는 과정에는 사회와 진료하는 의사의 관심, 이 모두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