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성환 안락항운병원장]
- 준비된 '빅5' 병원에 환자 더욱 몰릴 우려, 민원·소송 남발하면 법률가 집단만 이익 -
1999년 영상저장전송시스템(PACS)이 보험급여로 전환되면서 병원의 의료정보화에 불을 붙였다. 의료정보화는 병원 경쟁력의 측도로 여겨져 과잉경쟁 양상마저 빚어졌다. 대기업인 현대정보기술과 삼성SDS가 서울 아산 병원과 삼성의료원을 기반으로 의료정보시장에 뛰어들었고 이어 LG, 한화, SK C&C, 동양시스템즈, 코오롱정보통신, 쌍용정보통신 등이 경쟁적으로 진출했다. 의료정보화 산업은 본격적인 성장기를 맞았고 관련 업체들은 호황을 누렸다. 그러나 과잉경쟁에 따른 저가 수주로 수익성이 떨어지면서 호황기는 오래가지 못했다. 시장질서는 교란되고 영세업체들은 문을 닫기 시작했다. 기대를 모았던 원격진료 기반의 U-헬스케어 사업은 의료법 규제에 막혀 상용화되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2010년 지식경제부는 SK텔레콤, LG전자 등을 통해 '스마트케어서비스 시범사업'으로 서울대병원, 세브란스병원, 서울아산병원, 삼성의료원, 서울성모병원 등 이른바 '빅5 병원'과 모바일(통신), 의료기기(재택용 기기), 원격화상진료시스템을 통한 U-헬스 관련 사업을 진행했다. 이 사업은 기업 중심의 비즈니스 모델을 개발하면서, 도시 주민을 대상으로 IT(정보기술) 기반의 원격진료에서 건강관리 서비스까지 시도한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병원과 SK는 '헬스커넥터주식회사'를, 삼성의료원은 '모바일병원'을, 서울성모병원은 '평화유헬스'를 설립해 원격진료시스템을 갖췄다. LG유플러스는 명지병원과 제휴했다. 이들 병원은 국내는 물론 해외 환자들이 국내 병원을 찾을 경우까지 원격진료를 할 수 있게끔 수년간 경험을 축적한 상태다.
연세의료원과 KT는 2012년 7월 의료정보기술 융합사업전문 합작회사인 후헬스케어를 공식 출범시켰다. 대표이사는 연세의료원에서, 최고 사업 책임자는 KT에서 맡아 병원정보시스템과 e-헬스, 네트워크병원의 경영효율화, 의료정보화 사업을 중점으로 ICT(Information, Communication, Technology)와 의료기술 사업화를 시작하였다. 이들은 중소병원에 병원 정보시스템을 보급하여 '스마트의료 에코시스템'을 구축하고 경영지원 서비스도 제공하겠다고 밝혔다. 구체적으로 2016년까지 누적 매출 1조 원을 달성하겠다는 야심찬 계획까지 내놓았다.
U-헬스케어 전문 회사인 비트 컴퓨터와 제휴한 삼성물산 건설부문은 비슷한 시기에 몽골 IMC(International Medical Center)에 처방전달시스템(CPOE), 전자의무기록(EMR), 영상 저장전송시스템(PACS), 진단검사시스템(LIS), 전사적 자원관리시스템(ERP) 등 병원 정보시스템을 구축하는 138만 달러짜리 공급계약을 체결했다. 정부 입장에서는 경제를 살리고 일자리를 창출하는 데 안성맞춤이라고 여길 수 있겠다.
사실 우리나라 의료 ICT는 세계 최고의 수준으로 평가되고 있다. 이를 기반으로 세계시장을 상대로 고부가가치 시장을 열어갈 수 있는 저력도 갖고 있다. 그러나 동네의원은 준비가 되어 있지 않다. 원격진료를 실시하면 이미 준비된 '빅5' 대형병원들에 환자가 더 몰리게 되어 있다. 유명한 의사는 더 인기를 누리게 될 것이다. 지금도 처음 진료한 의사의 진단이 맞는지 이 병원 저 병원 다니면서 확인하는 환자들이 꽤 있다. 원격 진료는 이런 환자들의 수고를 덜어주게 되겠지만, 진료비 부담은 더 늘어날 공산이 크다. 어느 의사의 답이 정답인지 의심이 많은 환자들이 병원 쇼핑을 하게 될 것이다. 오진으로 발생할 환자의 손해는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의료사고는 물론이고 이러한 문제로 인해 민원과 의료소송이 남발하게 될 것이다. 의료체계의 대혼란이 불가피하다는 이야기다. 의사와 환자의 다툼 속에서 이익을 취하는 쪽은 법률가 집단과 대형병원, 그리고 대기업이 될 것이다.
TV토론에서 비친 정부 측과 보건의료단체 측의 대립은 누구도 서로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 모습이다. 소통의 부재다. 귀를 닫은 정부 측과 기득권층으로 몰리는 보건 의료계가 서로의 귀를 열고 상대방의 고민과 고충을 이해하면서 절충해야 할 시점임에도 불구하고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올해는 보건의료 단체와 정부의 한판 대결이 예상된다. 경제를 살리는 것도 중요하지만, 의료는 10년, 20년을 설계해야 하는 국가의 중차대한 대사이다.
2014. 01. 06 국제신문 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