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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의술인가, 서비스인가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3-11-26 (화) 11:29 조회 : 609


[황성환 안락항운병원 병원장]
 
- 서비스산업발전법, 경제적 논리로 의료정책 접근하면 국민 부담 줄 수 있어 -
 
1851년 발명된 청진기는 이후 의사가 환자를 진료하는 데 필수적으로 여겨져 왔고 진료과정의 상징이 되었다. 고대 그리스의 히포크라테스는 직접 환자의 몸에 귀를 대고 체내의 음을 들어 환자 상태를 판단하였다. 지금이야 당연하지만 실로 창조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청진기로 환자의 심장 소리, 호흡 소리, 장(腸)운동 소리 등을 듣고 상태를 판단하는 것은 160년 넘게 이어져 온 진료행위의 기본이고 시작이었다. 필자의 스승이자 후학들에게 성의(聖醫)로 알려진 전종휘 교수나 고 장기려 박사는 환자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고, 눈으로 관찰하며, 두드리거나 만져서 상태를 파악하는 것을 진료의 기본이라 가르쳤다. 요즘 소문난 의사들은 많은 환자를 소화하기 위해 환자의 이야기를 직접 듣기보다는 미리 정해진 병력 차트를 살펴서 핵심적인 질문만 하거나 보조의료진을 통하여 전달받고 해결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대형 병원의 유명의사를 만나기 위해 몇 달을 기다려 예약을 하고서 진료실에 들어선 환자는 긴장한 나머지 할 말을 다 못하는 경우가 많다. 그것의 부족한 점을 커버하는 것이 조직화된 서비스이다.

의료분야도 이제 서비스 마인드를 갖추어야 살아남을 수 있는 '사업'으로 분류되는 가운데 최근 국회가 현실과 괴리감 있는 '의료산업화'를 논의 중이어서 마음이 착잡하다. 원격진료 논란에 이어 정부 여당이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안 제정에 드라이브를 걸고 나섰는데, 이 법안이 의료서비스 분야와 무관하지 않아 부작용을 낳지 않을까 우려된다. 해당 법안이 침체된 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판단을 한 것 같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은 기획재정부가 2012년 정부 입법으로 내놓은 일자리 창출법안 중 하나이다. 핵심은 서비스산업 집중 육성이고, 그 중심에는 서비스산업선진화위원회가 자리한다. 정부는 5년마다 서비스산업 발전 중·장기 정책 목표 및 방향을 정하는 기본계획을 수립하고, 관련 중앙행정기관의 장으로 하여금 연도별 계획을 수립해 시행하는 것이다. 그 추진 상황을 위원회에서 점검하도록 계획하고 있다. 건강보험 관련 정책결정 과정에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가 역할을 하듯, 서비스산업 발전을 위한 주요 정책과 계획 심의기구로 별도의 위원회를 둔다는 얘기다. 문제는 의료서비스 또한 이 법의 적용을 받게돼 의료관련 각종 정책결정 과정에서 기획재정부와 경제계의 입김이 거세질 수 있다는 점이다.

반대편의 입장은 이를 의료민영화 추진단계로 보고 있다. 의료를 서비스산업으로 분류하면 결국 의료상업화와 민영화를 유도하여 경제적, 정책적 논리에 따라 의료계 전반의 시스템을 흔들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이다. 보건의료 분야의 특수성을 고려한다면 의료를 서비스산업 추진 대상에서 제외하고, 보건복지부에서 관장하도록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주장이다. 시장경제주의 신봉자를 자처하는 일부 경제학 폴리페서(Polifessor)나, 인성과 감성을 무시하는 매몰찬 수리 과학자들에 의한 의료계의 압박은 이미 도를 지나쳤다. 이번 법안 또한 이들의 논리에 휘말리는 것 아닌지 걱정이다. 요즘 의료계는 무소유의 큰 뜻이 통하던 시대가 더는 아니다. 선배 의사들의 가르침을 몸소 실천하기에는 의료 환경이 너무 팍팍하다. 의료 원가가 현실에 미치지 못하고 의료 소비자는 한 손으론 의술(醫術)을 다른 한 손으론 의료서비스를 요구하고 있으니 의사들도 답답하기만 하다. 의사와 환자 사이에 벌어지는 일상을 제대로 알지 못하는 국가 기관이 정해준 프레임에 따라 진료를 하자니 의사 스스로의 양심에 고민하고 소신 진료 후에 돌아오는 부당 청구의 비난과 짐은 의사와 환자 사이의 간격을 더 벌려놓기만 한다. 상업화되고 쏠림 현상이 심화된 의료계의 현실에서 '3시간 대기 3분 진료'는 어쩌면 당연한 귀결일 수밖에 없어 보인다.

한 나라의 보건의료 시스템을 발전시키고, 안정되고 체계적인 의료서비스를 국민에게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나라를 책임진 정치인과 정책 입안자의 기본자세이다. 그러나 의료를 지나치게 경제적, 수리적 논리로 접근하는 것은 뒤에 국민에게 또 다른 부담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서비스산업발전기본법에 대한 의료계의 우려스러운 목소리를 제대로 들을 수 있는 청진기를 선물하고 싶은 심정이다.
 
 
2013. 11. 26 국제신문 3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