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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울어진 운동장을 먼저 바로잡아라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3-11-14 (화) 09:06 조회 : 113

외국에서 살고있는 동생이 소변 볼 때 피가 섞여 나온다는 전화에 걱정이 되었다. 막내의 푸념에 기가 막힌다. “여기서는 병이 생기면 의사를 만나기 전에 죽든지 저절로 낫든지 둘 중 하나예요.”

그림= 김자경 기자
찬찬히 자초지종을 물었다. 먼저 동네 의원에서 1차 진료를 받았고, 그 일반의는 방사선과 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써 주었다. 방사선 병원에서 영상검사를 포함한 진료를 보았고, 이틀 뒤 결과지를 가지고 동네의원을 재방문했다. 이번에는 정밀검사가 필요하다며 비뇨기과 전문의가 있는 큰 병원에 진료의뢰서를 작성해 주었고, 2주 후에나 진료가 가능하단다. OECD 보건통계상 인구 1000명당 의사 수(4.0명)가 우리나라에 크게 앞선다는 호주의 의료 현실이다.

최근 의대 정원을 늘리겠다는 정부 발표가 있었다. 우리나라 의료의 심각한 문제는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기 때문이며, 그 근거로 OECD 보건통계를 제시했다. 우리나라 의사 수는 인구 1000명당 2.6명으로, OECD 평균(3.7명)보다 낮고, 멕시코(2.5명)에 이어 꼴찌에서 두 번째다. 여러 차례 의사 수를 늘리고자 했지만 의사 집단의 거센 반발로 무산돼 18년간 의대 정원이 동결됐다. 응급실 뺑뺑이, 수도권 원정진료, 의료 기피과목, 필수의료 인력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당장 의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것이다.

먼저 OECD 보건통계의 다른 수치도 확인해보자. 인구 1000명당 병원 병상수(12.8개)는 OECD 국가 중 가장 많다. 급성기 치료병상(7.3개)도 OECD 평균(3.5개)의 배 이상이다. 국민 1인당 외래 진료횟수, 입원환자 1인당 재원일수도 평균보다 배 이상 높다. 의사 수가 부족하다는 근거로 제시한 동일한 통계자료에서 충분한 병상과 연간 많은 진료를 받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의료의 질은 어떨까. 2020년 ‘회피가능사망률’은 인구 10만 명 당 142명으로, OECD 평균인 239.1명보다 낮았다. 회피가능사망률은 적절한 예방과 치료로 막을 수 있는 사망률을 의미한다. 의사 수가 절대적으로 부족한데 이런 양질의 의료가 가능하다는 것이 이해가 되는가. 또한 지난 5년간 OECD 평균 의사 수는 8% 증가한 반면, 한국은 13% 증가해 OECD 중 의사 수의 증가 폭이 가장 컸다. 국토 면적, 인구 밀도를 고려한 의료접근성, 즉 의사-환자 간 평균거리는 한국(0.88km)이 가장 짧다. 적절한 분배만 된다면 걸어서 10~15분 내에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촘촘한 의료망이 가능하다는 의미다. 단순하게 인구 대비 의사 수만 비교해서 의사 수가 절대 부족하다는 결론은 잘못된 것이다.

두 번째는 무작정 의사 수를 늘린다고 필수의료, 기피과의 문제가 해결될 것인가에 대한 의문이다. 필자는 5년 전 본 지면에서 ‘멸종위기의 흉부외과’라는 칼럼을 쓴 적이 있다. 지금은 상황이 더 악화됐다. 의대 정원이 동결돼 흉부외과에 지원하는 의사가 없었기 때문일까. 보건사회연구원에서는 산술적으로 2035년에는 의사 2만7000명이 부족하고 지금부터 매년 1000명씩 늘려야 한다. 그리하여 공급이 수요를 초과하면 이런저런 조건을 붙이지 않아도 (기피과로) 인력이 흘러갈 것이라는 ‘낙수효과’를 주장했다.

기울어진 운동장 한 편에 물이 고인 진창이 있어 그 장소에 뛰노는 아이들이 없다고 가정하자. 신입생을 많이 뽑으면 결국 운동장 전체에 학생이 놀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은 어리석다. 기울어진 운동장을 바로 잡는 것이 최우선이다. 의료의 적정한 배분 말이다. 의사를 많이 배출하면 한국 의료의 문제점이 해결된다는 정부의 진단은 명백한 오진이다. ‘전체 의사’ 부족이 아니라 ‘열악한 특정 영역의 의사 부족’이라는 전문가의 진단에 귀 기울여야 한다. 생명을 다루는 의료만큼은 절대로 정치적 편가르기나 주먹구구식의 독선적인 행정은 안된다. 충분한 소통으로 올바른 개선이 이루어지길 바란다.


한일용 부산백병원 흉부외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