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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료의 현실과 의사의 임무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3-12-05 (화) 09:09 조회 : 121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


평소 잘 알고 지내는 러시아 사할린의 산부인과 여의사가 아들이 결혼한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결혼을 축하하기 위해 아내, 통역관과 함께 사할린에 갔다. 러시아의 결혼 풍습은 낮에 예식을 하지않고 오후 6시부터 결혼식을 시작해 춤추고 노래부르고 보드카를 마시면서 밤12시를 넘겨 마치기도 한다.

그림= 김자경 기자
마침 세화병원에서 시험관아기시술로 임신돼 사할린에 돌아온 산모가 유산 위험이 있다고 해서 입원한 병원을 방문했다. 여러 이야기를 나누던 중 입원비는 얼마나 되는지 물어보니 진료비와 입원비 등 모든 병원 비용은 나라에서 부담해 무료라고 했다.

병원을 방문한 뒤 오후 5시에 결혼식장에 도착한 후 나는 화장실에서 양쪽 코를 막고 세게 코를 풀었다. 그때 갑자기 어지러워서 화장실 바닥에 주저 앉았고 통역관은 놀라서 급히 앰뷸런스를 불렀다. 병원 응급실에 도착 후 CT촬영과 신경외과 전문의의 초음파검사 등을 받았으나 다행히 큰 이상 소견은 없다는 진단을 받았다. 괜찮다는 말을 들으니 이제는 타국땅의 응급의료비가 걱정됐다. 앰뷸런스 사용료와 CT촬영 초음파검사 등 진료비가 얼마나 나왔는지 통역관에게 물어보았다. “원장님, 러시아는 국민도 무료이지만 외국인 진료비도 무료입니다.”

사회주의 러시아에서는 간호사나 수위의 월급은 물론이고 의사 월급도 나라에서 지급한다. 의사 급여는 간호사나 수위 월급보다 조금 높다. 나라에서 책정한 월급은 적은데 비해 의사가 진료하는 일은 많고 힘들어서 러시아 남자는 의과대학에 안가려고 한다. 그래서 러시아에는 여의사가 많다.

러시아의 사회주의 시스템으로는 열심히 일할 이유가 없으므로 의료기술의 발달을 기대하기가 어렵다. 그 결과 의료관광으로 한국에 와서 진료받고 있다. 미국에서 공부한 이승만대통령은 미국의 자본주의 의료시스템을 한국의 의료에 도입했다. 이런 자본주의 의료시스템으로 우수한 인재가 의대를 지원하게 되고 미국으로 유학해 습득한 선진의료 기술을 한국에 적용하는 원동력이 됐다. 그 결과 한국은 우수한 인재로부터 첨단의 치료를 받는 나라가 됐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라졌다. 정부가 의료수가를 사회주의 시스템으로 통제하다보니 세계에서 제일 싼가격으로 최첨단의 의료시술을 받는 나라가 됐다. 진료비가 싸니까 어떤사람은 하루에 2, 3곳에서 진료를 받으면서 ‘의료 쇼핑’을 하기도 한다. 밤새도록 당직을 서면서 4년간 배운 산부인과 전문의는 자신의 전문진료인 분만을 진료하면 병원 운영이 어려워서 분만을 포기하게된다. 전공의 과정후 취득한 소아과 전문의도 소아진료를하고 싶지만 현실은 그렇치 못하다. 7층의 외과병원을 운영하고 있는 외과전문의는 적자가 나 병원을 폐업했다. 그 건물자리에 개원한 동물병원은 지금 폐업한 외과병원보다 더 많은 흑자를 내고 있다. 사람을 치료하는 것보다 동물진료가 더 안정적인 것이 현재 우리나라 의료의 현실이다.

의사는 누구나 4년간 열심히 배운 자신의 전공과목을 진료하고 싶다. 그러나 진료 원가에 못미치는 보험의료수가로는 병원 운영이 어렵다. 할 수 없이 전공과목을 포기하고 다른 과목의 진료로 내몰리고 있다. 또 대학병원이 소도시에 분원을 개설하니 지역에 있는 개인의원은 문을 닫거나 자신의 전공진료를 포기하면서 의료시스템의 붕괴가 일어나고 있다.

이러한 현실에서 의사 수를 3000명 늘리는 방안이나오고 있다. 또 4차산업과 인공지능(AI)시대를 맞이하여 인간 대신에 로봇이 일하고 생각해주는 시대를 맞닥뜨렸다. 피할수 없는 비대면진료와 무궁한 의학지식이 담긴 인공지능으로 사람보다 더 정밀한 로봇수술을 하게 되면 의사의 역할은 어떻게 변할지 두렵기만 하다. 그러나 앞으로 다가올 쓰나미를 피하기보다 의사 본연의 자세로 임하면 더 많은 임무가 있을 것으로 생각한다.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