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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력 키우기 제5원칙, 사회적 소통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25-03-19 (수) 16:39 조회 : 5

오래 전에, 병원 진료에 늘 함께 오시던 노부부가 계셨다. 건강과 총기를 다 누리시고 금실도 좋아 주변 사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으시는 부부였다. 그런데 어느 날 할아버지만, 그것도 자식들이 모시고 오셨다. 조심스럽게 할머니의 안부를 여쭈었는데, 할머니께서 얼마 전에 돌아가셨단다. 아픈 분은 언제나 할머니셨는데… 할아버지는 어디가 아프신가 물었더니 자식들이 치매가 의심된다고 했다. 아내를 잃으신 후 식음을 전폐하시고 활동도 안 하시더니 몸져 누우셨단다. 그러다 횡설수설, 환각까지 보신다고.

영락없이 치매에 걸린 것으로 보이지만 신경과 의사라면 우울증에 의한 가성(假性)치매를 먼저 생각한다. 할아버지는 ‘아내와의 사별→매우 강력했던 인간적 유대감의 상실→우울증→인지 기능 저하’로 이어졌다. 우울증이 잘 치료되면 가성 치매에서는 벗어날 가능성이 높다. 하지만 이전의 총기는 기대하기 어려울 것 같다. 부부간 강력한 유대감이 보통 수준 이상의 뇌 기능 발휘에 큰 비결이었는데 이젠 그것이 없어져 버렸으니.

비단 할아버지의 개인적 문제만이 아니다. 사회적 유대가 좋은 사람은 인지 기능이 잘 유지되는 편이다. 외로운 사람은 치매 발병률이 40%나 올라가기도 한다. 무슨 이유로? 혼자 지낸다고 오장육부가 망가진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는데 왜 유독 뇌만 망가진다는 말인가?

인간 생존 필수 3요소를 정한다면 산소 음식 체온 유지다. 이를 해결하면 무인도의 로빈슨 크루소처럼 ‘생존’할 수는 있다. 하지만 사람 답게 ‘생활’했다고는 하지 않는다. 뭐가 부족해서? 바로 인간 관계가 없기 때문이다.

인간의 뇌는 생존 외에 사회성이라는 본능도 타고 났다. 아기도 첫 울음을 멈추면 주변인들과 인간 관계를 만들려고 한다. 생존과 직결되는 까닭이다. 아기들도 매력을 뽐내며 시선을 끌고, 사람 얼굴과 비슷한 형태만 보아도 꺄르륵 웃어준다. 누가 가르쳐주지도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사회성은 본능일 수 밖에.

뇌구조를 들여다보아도 머리 속은 사회성, 감정 처리, 공감 형성을 담당하는 신경세포와 시냅스(신경의 연결점)로 아주 복잡하다. 이렇게 사회성 신경계(라고 부르자)를 타고 났고 외부적 자극, 즉 사회적 관계에 반응해 용불용설(用不用說)에 따라 많이 쓸수록 크고 강해진다. 혼자 산다면 별 필요 없는 부분이다. 진화의 혹독한 담금질을 통해 뇌에 남은 것 중 쓸모 없는 건 없다. 사회성 신경계는 도파민이나 옥시토신 같은 신경전달물질을 내뿜어 우리 삶에 다양한 색칠을 한다. 다른 사람과 만나 웃고 떠들면 스트레스도 줄고 새로운 지식도 들어오고, 기억할 것도 많아지고, 생각도 많아져 뇌 활동이 는다.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뇌에 새로운 시냅스가 생기고 뇌가 강해진다. 근육의 무게가 육체적 강건함의 핵심인 것처럼 시냅스의 연결이 뇌 건강에 중요하다. 사회적 유대가 끊기면 불안이나 우울, 불면, 인지기능 저하, 나아가서는 치매나 뇌졸중의 위험이 높아진다. 죽는 날까지 사회적 연결 끈을 놓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그런데 누구인들 외톨이로 지내고 싶어서 그럴까? 나이가 들수록 만나는 사람도 줄기 마련이다. 아이들도 커서 독립하고 제 살길이 바빠 자주 보기 어렵다. 그나마 곁을 지켜온 배우자나 친척, 친구들도 하나 둘 세상을 떠나거나 요양병원행이다. 어쩔 수 없으니 외로운 것인데 어찌 하란 말인가? 맞는 말씀이다.

20세기 후반기에 태어나 이제 노령으로 접어든 한국인보다 더 치열하게 살아온 국민도 찾기 쉽지 않다. ‘10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 말은 참 우리에게 어울린다. 다른 나라는 10년 만에 변하는 경우가 거의 없다. 우리가 누군가? 변화와 적응, 도전과 응전에는 이골이 난 민족이 아닌가? 이제 나의 뇌력 관리를 위해 마지막 관문 사회성 유지에 선제적으로 대응해보자.

먼저 그동안 소원하게 지냈던 친구들에게 연락 한번 해보자. 좋은 친구를 새로 사귀는 것보다는 잊고 지내던 좋은 친구를 다시 만나는 일이 100배 쉬운 일이다. 휴대전화 전화번호부나 SNS는 이럴 때 쓰라고 있는 거다. 그렇다고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광폭의 교우 관계를 꾸릴 필요는 없다. 출마할 생각이 아니라면 편한 친구 위주로 만나라. 스트레스까지 받으면서 만날 필요는 없다. 인간 관계의 긴장감은 심혈관 및 뇌 건강에 매우 해롭다. 시간 건강 돈을 편한 관계에 집중하라.

‘비대면’ 접촉도 나쁘지 않다. 예쁜 엽서나 손편지를 보내면 상대방 뇌에서는 광안대교보다 더 화려한 세로토닌 불꽃 놀이 폭죽이 터질 것이다. 화상 전화도 괜찮다. 접촉이 중요하다. 눈을 켜고 정보를 찾는 것도 좋다. 각종 포스터, 공공기관 홈페이지 등을 보면 무료 혹은 가성비 좋은 공연이 참 많다. 공짜라 수준이 떨어진다고? 내가 낸 세금의 지원을 받아 무료로 하는 거다. 안 가면 나만 손해다. 모르니까 못 가는 거다. 도서관도 빼놓지 말자. 우리 동네 도서관에만 가봐도 행사나 모임이 서너개 있다. 독서 모임, 저자와의 만남, 교양 강좌 등. 한번 가보면 어디서 이렇게 많은 사람이 모였나 놀랄 것이다. 자 오늘 이야기의 결론 한 줄만 기억하자. 고독은 치매로 가는 ‘하이패스’ 톨게이트다!


박지욱 신경과전문의·메디컬티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