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보건복지부의 의료정책은 의료비 감축이라는 지상 과제를 실현하고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듯 하다. 건강보험 재정의 소멸을 앞두고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어 복지부의 방향성도 어느 정도 이해는 간다. 하지만 방법을 보면 과연 제대로 추진되고 있는 것인지 걱정이 된다. 실비보험 개혁의 경우에는 정부가 금융통화위원회를 동원하면서까지 개입해 이미 계약한 국민의 부담을 늘리고, 보험회사의 부담을 줄여주는 듯하다. 이에 건강보험 파산 이후엔 실비보험이 그 역할을 대신하게 하려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나오는 실정이다.
병상 수 제한 정책 역시 과도한 의료 공급을 제한해 의료비 총액을 줄이겠다는 취지는 이해가 되나, 결국 인구가 줄어 드는 지방은 의료과잉 지역으로 묶여 더 이상의 의료 공급이 제한되고, 인구가 늘고 있는 수도권(인천 수원 성남 안양)은 오히려 병상 공급이 가능해 수도권에 대한 의료자원 집중을 가속화하는 결과를 초래하게 되었다. 이러한 정책 결정은 향후 지방 의료환경을 개선해 지방 소외 및 몰락을 막고자 하는 의지는 전혀 없이 수도권 집중을 고착화 또는 심화시키고자 하는 의도에서 집행된다고 볼 수밖에 없다.
줄어드는 인구 속에서 지방 의료계가 살아 남을 길은 새로운 시장을 개척해 나가는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기존 비급여 시장은 실비보험 개혁과 경기침체로 한계에 부딪힐 것이고, 결국엔 외국인 환자 유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한국 의료기술의 우수함은 이미 전 세계적으로 입증됐고, 수많은 해외 동포들이 치료를 위해 한국으로 돌아와서 의료 서비스를 받고 돌아가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거인병원에도 미국 일본 캐나다 등지의 교포들이 수술 및 외래 진료를 받고 귀국하는 사례가 점차 증가하고 있다. 하지만 척추관절 수술의 경우엔 수술 후 재활 치료 및 경과 관찰을 위해 일정한 회복 기간이 필요한데 외국 국적의 환자는 의료 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조기퇴원하고 외래 추시를 하곤 한다. 이런 환자들은 대부분 국내 거주 친인척의 집이나 관광 인프라가 그나마 잘 구비된 해운대 지역의 숙박시설을 이용하곤 하는데, 동래구 사직동에 위치한 거인병원 주위에는 머물 만한 곳이 없어 아쉬워하는 실정이다. 중소병원인 거인병원 이용환자들이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데, 대학병원을 방문한 외국인 환자들의 불편함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국내 의료관광의 대부분은 서울 강남구의 피부 성형 의원을 방문한 중국 일본 환자들로 알려져 있으나, 내과 검진 환자의 비중도 점차 증가하고 있다. 그에 반해 세계적으로 인정 받고 있는 국내 의료의 한 축인 정형외과 및 신경외과 환자의 비중은 매우 낮다. 대부분의 의료관광 방문이 수도권에 집중된 결과, 부산이 차지하고 있는 의료 관광의 비중은 2%대에 머물러 있다.
현재 의료관광호텔의 설립 기준은 외국인 투숙객의 비율이 60% 이상을 유지해야 한다. 이 같은 비현실적인 규정 때문에 관련 법규가 제정된 지 11년이 지났지만 단 한 개의 의료관광호텔도 설립되지 못했다. 이 것이 의료 관광이 아직 활성화 되지 못한 첫 번째 이유다.
미국 교환교수 연수 때나 ‘미국견주관절학회 순회 장학생’ 연수기간 방문했던 유명 정형외과 병원 앞에는 항상 조그마한 호텔들이 존재했다. 의료비가 비싼 미국의 현실상, 수술 후 다음 날엔 비싼 입원비 때문에 퇴원한 환자들이 그 호텔에 투숙하면서 외래 추시 치료를 받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비록 3년 전 부산 서구가 의료관광특구로 선정되긴 했으나, 숙박시설 법규가 해결되지 않는다면 의료관광의 첫 번째 관문인 의료관광호텔 문제 해결은 요원할 것으로 보인다. 또한, 외국인 의료 관광을 알선하는 유치업체 관리에도 관계 당국이 적극적으로 나서야 할 것이다. 의료관광 에이전시에 대한 의존으로 인해 유치 수수료 요구나 불공정 행위가 일어날 소지가 다분하며, 그로 인해 의료 관광의 질이 낮아지고 수도권 대비 부산 의료기관에 대한 접근성도 떨어질 가능성이 높다.
따라서 의료 관광 에이전시를 엄격하게 관리하고 외국인을 위한 의료정보 제공에 대해서는 국내 환자들과 다르게 적용해, 외국인 환자들이 의료 서비스에 대한 정보를 스스로 정확하게 알 수 있는 방법 등 제도적 장치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외국인 환자를 대상으로 하는 의료 관광 사업은 건강보험 지출을 줄이고자 하는 정부 방침에도 적합하면서도 경쟁력 높은 국내 의료 서비스를 활용할 수 있고, 천혜의 관광 여건이 뛰어난 부산에 적합한 미래 산업으로 볼 수 있다. 기존 의료 서비스를 뒷받침할 수 있는 제도적 개선만 있다면 부산 의료 서비스 시장의 경쟁력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