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료현장도 AI화 가속도…최종결정 여전히 사람 몫
환자마다 다른 치료 기준…책임 있는 의사결정 중요
이승준 거인병원 대표원장
최근 의료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되는 단어 중 하나가 AI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하더라도 AI는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여겨졌지만, 지금은 상황이 완전히 달라졌다. 생성형 AI는 이미 일상 속으로 들어왔고, 의료 분야에서도 AI는 연구실 속 기술이 아니라 실제 진료 현장에서 활용되는 도구가 되어가고 있다.
의료 AI의 역사는 생각보다 길다. 국내에서는 2018년 루닛과 같은 기업들이 흉부 X선 영상을 분석해 폐결절과 폐암 의심 병변을 찾아내는 기술을 상용화하면서 본격적인 의료 AI 시대가 시작됐다. 당시에는 AI가 의사를 대체할 것이라는 기대와 우려가 동시에 존재했다. 하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 AI는 의사를 대신하기보다 의사의 판단을 보조하는 역할로 자리 잡았다. 이후 발전 속도는 더욱 빨라졌다. 현재 미국 FDA가 승인한 의료 AI 기기는 1000개를 넘어섰으며, 상당수가 영상 분석 분야에 집중돼 있다. 거인병원을 포함한 국내 병원들도 AI 기반 영상 분석 시스템을 실제 진료에 적용하고 있다. 근골격계 영상의학 영역에서도 골절 진단, 척추 정렬 평가, 관절염 분석, MRI 기반 연부조직 평가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정형외과 역시 예외는 아니다. 어깨 MRI에서 회전근개 파열의 크기를 측정하고, 근육의 지방변성 정도를 정량화하며, 관절염의 진행 상태를 분석하는 기술들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다. 최근에는 영상 분석을 넘어 환자의 병력과 검사 결과를 종합해 치료 옵션까지 제시하는 서비스도 상용화되기 시작했다.
하지만 기술이 발전할수록 오히려 더 중요해지는 문제가 있다. 바로 거버넌스와 책임의 문제다. 많은 사람들은 AI의 정확도가 높아질수록 의료의 문제도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실제 의료 현장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AI가 특정 환자에게 수술을 권고했는데 결과가 좋지 않았다면 누구에게 책임이 있는가. 반대로 AI가 보존적 치료를 추천했지만 치료 시기를 놓쳐 병이 악화되었다면, 그 책임은 누가 져야 하는가. AI는 판단을 제시할 수는 있지만 책임을 질 수는 없다.
이 문제는 의료계만의 고민도 아니다. 다양한 산업 분야에서 AI 활용이 확대되고 있지만 최종적인 의사결정과 책임은 여전히 사람에게 남아 있다. 결국 AI 시대의 핵심은 기술 자체가 아니라 기술을 어떤 원칙 아래 운영할 것인가에 대한 거버넌스라고 볼 수 있다.
특히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니라 삶의 질과 관련 있는 척추·관절 분야에서는 이러한 문제가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같은 MRI 소견을 가진 환자라도 치료 방향은 크게 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회전근개 전층 파열이 발견되었다고 해서 모든 환자가 동일한 치료를 받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25세 프로야구 선수와 75세 은퇴자의 목표는 다를 수밖에 없다. 전자에게는 운동 복귀가 중요하지만, 후자에게는 통증 완화와 일상생활 유지가 더 중요한 목표가 될 수 있다.
실제 의료 현장에서 어려운 것은 진단보다 의사결정인 경우가 많다. MRI는 병변을 보여줄 수 있지만, 환자의 직업과 가치관, 삶의 목표까지 설명해주지 못한다. 영상 소견은 심하지만 증상이 경미한 환자가 있는가 하면, 영상 소견은 심하지 않지만 일상생활에 큰 지장을 겪는 환자도 있다. 수술 가능여부에 대한 판단보다, 수술이 정말 환자에게 도움이 되는가를 판단하는 일이 훨씬 더 어려울 때도 있다.
AI가 발전할수록 의사 역할도 변화할 것이다. 과거에는 의사가 정보를 가장 많이 가진 사람이었다. 그러나 앞으로는 환자와 의사 모두 AI의 도움을 받아 비슷한 수준의 정보를 공유하는 시대가 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의사의 경쟁력은 정보를 많이 아는 것에 있지 않을 것이다. 여러 검사 결과와 임상 경험, 환자의 가치관과 생활환경, 장기적인 예후를 종합해 가장 적절한 방향을 제시하는 능력이 더욱 중요해질 것으로 보인다.
의료기관의 경쟁력 역시 마찬가지다. 앞으로 대부분의 병원이 유사한 AI 기술을 사용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결국 차이를 만드는 것은 AI 자체가 아니라, AI가 제공하는 정보를 얼마나 효과적으로 활용하여 환자에게 적절한 결정을 내려줄 수 있는가에 달려 있을 것이다.
AI는 앞으로 의료의 많은 부분을 변화시킬 것이다. 진단은 더욱 빨라지고 분석은 훨씬 정확해질 것이며 행정 업무는 더 효율적으로 바뀔 것이다. 그러나 환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한 데이터가 아니라 자신에게 가장 적절한 선택을 설명해 주고 그 결정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전문가다. 다가오는 의료의 미래는 AI와 의사가 경쟁하는 시대가 아닐 것이다. 오히려 AI가 정보를 제공하고 의사가 그 정보를 바탕으로 책임 있는 결정을 내리는 시대에 가까울 것이다. 기술은 계속 발전하겠지만, 사람을 위한 결정은 여전히 사람의 몫일 가능성이 높다.
이승준 거인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