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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디스크 환자도 골프칠 수 있나요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7-04-18 (화) 09:04 조회 : 946


조철민 메트로적추병원장·신경외과 전문의 

[진료실에서] 디스크 환자도 골프칠 수 있나요

골프 하면 몇 달간 통증으로 밤잠도 설치고 한쪽 정강이 살이 홀쪽 빠져서 절룩거리지만 건장한 체격과 우렁찬 목소리를 가진 백발의 청년 같은 박 사장님이 기억난다. 환자의 통증이 너무 심할 것 같아 무리해서 수술 일정을 잡았는데 그는 통증이 좀 나아 수술하지 않고 일단 퇴원하겠다고 우겼다. 그러던 와중에 이 환자가 자신의 고등학교 친구라며 수술을 잘 부탁한다는 사촌 형의 전화까지 받았다.

환자가 보기보다 겁이 많거나 사업을 크게 해 피치 못할 사정이 있을 거로 생각했다. 면담했더니 생각하지도 못한 절실한 사정과 오해가 있었다. 그는 1997년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위기의 직격탄을 맞고 하루아침에 알거지가 됐다가 다시 일어선 오뚝이 같은 분이었다. 그는 사업도 자기 목숨만큼 중요하지만 골프를 못 치게 되면 인생이 끝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나는 저간의 사정을 알고 "이번에 수술을 안 하면 골프를 영원히 못 칠 수 있다"고 설득했지만 그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내가 재차 "타이거 우즈도 디스크 수술을 한 환자"라고 했더니 그는 "진짜냐"는 질문과 함께 관심을 보였다.

결국, 그는 타이거 우즈가 디스크 수술을 받은 적이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허리 수술을 받았다. 수술 당일 저녁에 사촌 형이 병문안을 오는 바람에 세 명이 진료실에서 커피를 마셨다. 그는 "수술 당일 움직일 수 있고 커피도 마실 수 있는 별거 아닌 수술인데 왜 그리 겁을 줬느냐"고 반문하면서 '재활을 잘하면 다시 공을 칠 수 있다'는 내 말에 환하게 웃었다.

척추에 문제가 있으면 구기 종목의 원리와 원칙을 잘 알아야 즐길 수 있다. 구기 종목은 손이나 발로 혹은 도구를 사용해 척추를 축으로 한 회전 타격운동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첫째, 살아 움직이는 공이 아닌 정지된 공을 타격하라. 둘째, 한 손 한 발이 아닌 양손 양발로 타격하라. 셋째, 강하게 타격하기보다 정확하게 타격하라. 여기에 잘 부합하는 구기 종목이 당구, 게이트볼, 골프다.

허리와 목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 운동을 다시 하게 된다면 평소 자기 관리를 충실히 해야 한다. 진통제를 먹고 시합에 나가는 것은 무모한 짓이다. 수술한 환자와 수술하지 않았지만 척추에 문제가 있는 환자 그리고 척추 건강을 자신하는 중년 이후 모든 사람에게 늘 하는 얘기가 있다. 운동하고 싶은 욕구보다 배 이상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또 나이 앞에서 겸손하고 젊은 시절의 기억은 추억으로 접고 힘, 속도, 거리를 줄이고 대신 정확도를 높여 보충하는 게 구기 종목을 대하는 올바른 태도라고.

시합 전날 충분히 쉬고 시합 당일 경기장에 일찍 가서 몸을 풀고 경기를 마치면 마무리운동을 꼭 해주고 금주·금연해야 오래 즐길 수 있다는 점은 척추 전문의의 충고라기보다 상식에 가깝다. 백발의 청년 박 사장님은 거리를 내려고 용쓰면 안 된다는 점을 알고 계시는지 모르겠다.

2017년 4월 18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