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세바른병원 병원장·신경외과 척추전문의]
< 마음이 편안해야 허리도 바로 선다 >
'척추는 마음의 병이다'. 국내 유명 대학병원 척추외과 교수의 말이다. 이 견해에 많은 척추외과 의사가 동의한다. 스트레스가 척추 질환에 상당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진료하면서 수없이 확인한 까닭이다. 다음은 진료실에서 자주 보는 풍경.
심각한 다리 통증을 호소하며 진료실에 절룩이며 들어오는 디스크 환자가 종종 있다. 다리를 지배하는 신경이 디스크에 심하게 눌리면 당연히 그럴 수 있다. 근데 MRI 검사를 해보면 왜 다리를 절면서 아파하는지 의아할 만큼 신경이 디스크에 눌리지 않은 것이다. 반면 멀쩡하게 진료실에 들어오는 환자 중 검사상에선 심각한 상태인 경우도 있다.
의사들은 환자의 증상이 영상 검사 결과와 일치하지 않으면 상태를 자세히 파악하기 위해 이런저런 질문을 던진다. 전자는 대부분 스트레스가 심한 상황에서 작은 통증에도 예민한 상태이고, 후자는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스트레스는 치료 후에도 영향을 미친다. 척추 치료를 받은 환자는 빠르면 3, 4시간 만에, 길어도 일주일 정도면 일상생활로 돌아간다.
급성통증으로 힘겨운 날들을 보낸 환자들이 일상으로 돌아가 보이는 태도는 크게 두 가지다. 통증을 금방 잊어버리거나 너무 오래 기억하거나.
전자는 '다 나았겠지'라는 생각으로 다양한 모험(?)을 한다. 격한 운동을 하거나 잦은 야근과 회식 등으로 몸을 혹사시켜 치료가 허사가 되기도 한다. 이런 환자에겐 "처음부터 다시 치료를 해야 합니다"라고 엄포를 놓으며 조심시키는 수밖에 없다. 후자는 극심한 통증의 기억 때문에 심신이 많이 위축된 경우이다. 통증이 해결됐지만 다시 찾아올 수 있다는 불안감 때문에 우울증을 앓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나는 위축형 환자에게 더 마음이 쓰인다. 전자는 척추 질환만 해결되면 일상생활로 돌아가는 데 큰 불편이 없다. 그저 모험심만 자제하면 된다. 하지만 후자의 경우 척추 질환이 해결됐음에도 일상생활로 돌아가지 못한다. 진정한 의미에서 치료가 끝난 상태가 아닌 것이다. 좋아하는 등산이나 운동도 피하고 사람들과 어울리는 일도 꺼린다.
통증은 원인을 통제하면 충분히 조절된다. 안 아프도록 노력하되 그 노력이 너무 커져 아무것도 못 할 정도로 위축돼서는 안 된다. 물론 디스크는 재발이 가능한 질환이다. 암처럼 한 번 떼어내고 5년간 아무 이상이 없으면 완치라고 판정을 내리기에는 무리가 있는 조직이다. 하지만 통계상 '한 번 시술이나 수술을 한 곳에서 다시 디스크가 튀어나오는 경우'를 포함해 디스크를 앓았던 사람이 다시 디스크를 앓게 될 확률은 5%로 높지 않다. 혹여 5%에 들어 또 아프게 된다고 해도 다시 치료하면 된다.
척추질환은 마음의 병일 수 있다. 척추외과 의사로서 시술이나 수술뿐 아니라 환자에게 건네는 따뜻한 말 한마디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본다.
2016년 5월 3일 화요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