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훈 세바른병원 병원장 · 신경외과 척추 전문의]
< 내 몸의 작은 변화에도 귀 기울이길 >
경남 고성에서 한 할머니가 할아버지를 앞세우고 진료실을 찾았다. 앉기도 전에 할머니는 "우리 양반 걸음이 이상해요"라며 서둘러 말했다. 할아버지는 들어올 때부터 쓰러질 듯 휘청휘청 걷고 있었다. 걸음걸이 이외에 특별한 증상은 없었다. MRI검사 결과 허리 부위의 디스크가 튀어나와 척수를 심하게 누르고 있었다. 허리디스크라고 진단을 내렸지만 할머니는 "허리는 안 아프다는데"라고 되물었다. 자식들이 "척추질환인 것 같다"며 병원을 예약해주었지만 할아버지에게 허리 통증이 없어 할머니는 반신반의했던 모양이다.
이 할머니처럼 척추질환의 신호를 잘 모르는 사람이 적지 않다. 척추질환은 꼭 허리나 목 통증을 수반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인다. 단언컨대 척추질환은 허리나 목 통증 없이도 나타날 수 있다. 가끔은 수저질이 잘 안 되거나 단추를 제대로 끼우지 못하는 증상만 나타날 때도 있다. 붕 떠서 걷는다거나 다리에 힘이 없는 느낌만 생길 때도 있다.
병의 원인이 되는 곳이 아닌 다른 부위에서 척추질환의 증상이 나타나는 이유는 뭘까. 모든 척추의 병은 결국 수많은 신경다발 중 어딘가가 손상되는 문제로 귀결된다. 신경 가지는 특정 신체 부위와 연결돼 있어 그곳의 감각과 움직임에 관여한다. 그래서 똑같은 척추질환도 중앙 신경인 '척수'가 손상될 때와 가지신경인 '신경근'이 손상될 때의 증상이 조금씩 다르다.
전자의 경우 수저질을 잘 못 한다거나 잘 걷지 못하는 방식으로 증상이 나타난다. 대체로 팔이나 다리 움직임에서 조화가 깨지는 증상이 시작된다. 후자의 경우는 증상이 조금 다르다. 다리만 아프거나 다양한 팔 동작 가운데 특정 동작만 안 될 때가 많다. '신경근'은 신체 전반이 아닌 특정 신체 부위의 감각과 운동만 지배하기 때문인데, 척수 손상 때와 달리 통증도 함께 수반한다. 이때의 통증은 눌린 신경의 위치에 따라 발이나 종아리 부위에 나타난다. 실제 다리에는 아무 이상이 없지만 다리로 뻗어 있는 신경 가지가 요추에서 눌리면 뇌는 그 신경 가지가 관장하는 다리에 통증이 있다고 오판하는 것이다.
그러다 척추질환을 오랜 기간 방치했을 때 마치 큰 사고를 당한 것처럼 전신 마비나 하반신 마비까지 나타날 수 있다. 뼈처럼 굳어진 디스크가 점점 튀어나오면서 척수를 꽉 압박한다고 생각해보라. 척수 입장에선 절단기에 의해 신경이 서서히 잘리는 일이 벌어지는 것과 같은 것이다.
척추외과 의사라면 척추질환자에게 꼭 당부하는 말이 있다. '갑자기 몸에 마비가 오거나 대소변 실금이 생기면 응급 상황이기 때문에 바로 병원으로 오라'는 것이다. 척추질환은 증상이나 종류, 발병 연령대까지 다양해지면서 우리 일상과 가장 밀접해진 질환이 돼버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만큼 병에 대한 '잘못된 상식'과 대수롭지 않게 넘기는 '방관'도 만연하다.
평소 내 몸에 일어나는 작은 변화에도 귀 기울이고, 이상이 있을 땐 참지말고 가까운 병원을 찾길 바란다.
2016년 5월 31일 화요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