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창구 동남권원자력의학원 신경외과 과장]
- 아기 안 생길땐 머리도 체크해봐야 -
20여년 전에 진료했던 한 여성 환자가 생각난다. 당시 그녀는 결혼 7년차로 30대 중반이었다. 갑자기 발생한 두통이 심해져 병원을 찾게 되었다고 했다. 간단한 신경검사에서 별다른 이상 소견은 보이지 않았다. 두통 치료는 원인이 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 참 어렵다. 결국 머리 CT를 촬영해보니 뇌하수체 선종이 발견됐다. 호르몬검사 결과와 종합해 그 환자는 유즙분비호르몬종으로 진단됐다.
성인 여성에 이 종양이 생기면 생리가 없어지고 가슴에서 젖이 분비되는 등의 특징적인 증상들이 나타난다. 특히 가임기 여성은 임신이 되지 않는 불행을 겪게 된다. 그 환자도 결혼 후 얼마 되지 않아 생리가 불규칙해지더니 점차 사라졌다고 했다.
먼저 주위 아는 언니들에게 의논하니 생리불순이라며 갖가지 처방을 알려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그 처방들은 아무 효과가 없었다. 병원에도 몇 차례 갔지만, 의사들은 꼬치꼬치 묻기만 하고 낫게는 못해줘서 의사들을 그리 신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번에는 두통이 너무 심해 검사나 받아보려고 병원에 오게 되었다고 했다. 필자가 보기에 그녀는 마음고생만 했지 실제적인 행동을 한 것은 별로 없는데도 매사에 짜증만 부리고 있었다.
이 종양은 뇌종양 중 특이하게 수술 없이 약물치료가 가능할 수 있다. 그녀의 경우 종양이 그리 크지 않았고 시신경 손상 등 다른 신경 증상이 없어 약물치료를 시작했다. 그리고 1년 정도 경과한 뒤 검사상 종양이 사라지고 호르몬 수치가 정상으로 되면서 그녀의 모든 증상도 사라졌다. 따라서 규칙적인 치료를 종결하고 일정 기간의 경과를 두고 추적하기로 결정했다. 그러나 그녀는 이 말을 듣고 난 후 병원에 오지 않았다. 잊을 만큼의 시간이 지난 어느 날 그녀가 외래에 접수한 것을 알게 되었다. 진료실에 들어온 그녀는 생후 1년 된 아들을 가슴에 안고, 손에는 내게 선물할 와이셔츠를 들고 있었다. 비슷한 또래의 여성 2명과 함께였다.
"그동안 아기를 갖게 됐고 출산, 양육하느라 병원에 오지를 못했다"며 그녀는 미안해 했다. 하지만 여러 사람의 소원이었던 아이를 가지게 되어 너무 행복하다며 필자에게 거듭 고마움을 나타냈다. 그러면서 아기가 없는 두 분을 모시고 왔으니 자신에게 해줬던 것처럼 임신 특효약을 그들에게도 처방해줄 것을 요청했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특수한 경우였고, 두 분의 여성은 검사 후 해당 질환임이 확인되면 처방하겠다고 해도 막무가내로 나와 이해시키기 어려웠다. 호르몬검사 결과 두 분 다 해당사항이 없었다.
그 후에도 그녀는 주변에 불임인 여자가 있으면 나에게 데리고 왔다. 이로 인해 신경외과 외래가 불임 환자로 북적이기도 했다. 이제 그녀도 나이가 들었지만 아직도 누가 불임이라는 말을 들으면 며느리뻘 되는 불임 여자들을 데리고 가끔씩 나에게 온다.
2014. 07. 29 국제신문 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