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용학 메디우먼산부인과 대표원장]
요즘 분만실엔 새로운 풍경이 펼쳐진다. 자연스럽게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와 진통 중인 아내를 도와주고 있는 모습이 그것이다. 10년 전만 해도 남편이 분만실에 출입한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었다.
하지만 미국과 유럽 등 선진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아무렇지 않게 남편이 분만실에 들어간다. 남편은 입회 분만을 자연스러운 것으로 받아들인다. 일본만 해도 온 가족이 참여해 진통중인 임신부를 도와주고 탄생의 전 과정을 함께하고 있다.
남편의 입회 분만이 우리나라에서도 대세로 자리 잡게 된 계기는 10여 년 전 도입한 유럽의 선진 분만법인 르봐이예 분만이다. 또 많은 임신부가 자연스러운 출산을 바라게 됐고, 이런 욕구를 산부인과에서도 받아들인 결과다.
남편의 입회 분만은 진통 중인 임신부에겐 아주 중요하다. 진통 과정을 함께하고 도와주면 진통 시간이 줄어들고, 분만도 촉진된다.
미국에서 발표된 연구자료가 이를 잘 뒷받침한다. 산통을 겪는 쥐를 두 그룹으로 나누어 한쪽에는 아빠 쥐를 넣어주고 다른 한쪽에는 아빠 쥐를 넣어주지 않았다. 실험 결과는 놀라웠다. 아빠 쥐를 넣어준 그룹에서 진통 시간이 평균시간 대비, 절반으로 줄어드는 효과가 있었다.
남편이 입회하면 진통 중인 임신부는 의지할 수 있는 부분이 강하게 작용할 것이고, 이는 진통시간을 줄이는 데 큰 효과를 낸다. 통계 결과를 보면 진통을 두려워하는 임신부보다, 진통을 당당하게 받아들이는 임신부의 진통 시간이 평균 2시간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남편의 입회 분만은 육아에서도 특별한 효과를 낸다. 우리 병원에서 정통의 르봐이예 분만을 시행하면서, 아기 탄생 이후 아빠와 함께하는 바스 타임에 감동의 눈물을 흘리며, 태교 송을 부르는 아빠의 모습을 자주 본다. 이는 결국 가장으로서 확실한 의지로, 더욱 더 적극 육아 과정에 참여하는 동기가 될 것으로 생각한다. 아기는 태어나 엄마와 관계 형성을 하는 '모아 애착'이라는 본능적 행위를 거쳐 성장하지만, 아빠와의 관계 형성은 육아 과정에서 자연스레 형성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도 아빠의 적극적인 육아 참여는 무엇보다 아이의 성장 과정에서 중요하다고 여겨진다.
남편이 아내의 임신기에 잘 배려해주고, 진통 과정을 함께하며, 아기가 태어난 뒤 육아 과정에 참여하는 것은 아이의 뇌 발달 과정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아이의 '창의성'과 '사회성'이 잘 발달한다는 것이다.
이런 사실만 보더라도 남편의 입회 분만은 진통 중인 엄마에게 단순히 진통을 극복하는 효과를 주는 데 그치지 않고, 아이의 성장 과정과 가정의 행복 요소에도 상당한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아내의 성화에 못 이겨, 아니면 의무감으로 남편이 분만실 입회에 나서는 것이라면 곤란하다. 입회 분만 자체를 두려워할 필요도 없다.
과거 우리는 임신, 출산, 육아를 모두 여성의 몫으로 돌렸지만, 지금은 남편뿐만 아니라, 가족 전체가 함께하는 개념으로 정립되고 있다. 이 때문에 현재 아내의 임신을 맞이하고, 진통 과정을 함께할, 세상의 모든 남편과 가족에게 많은 용기와 격려를 드리고 싶다.
2013. 03. 26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