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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시골 의사, 도시 의사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4-02-04 (화) 09:54 조회 : 736


[반성수 세흥병원 진료부장]

- 농촌 할머니 치료 후 받은 고구마 잊혀지지 않아 -

저는 부산에 오기 전에 경남 고성에서 약 3년 반 동안 근무했습니다. 도시와 시골에 모두 있어 본 덕에 다양한 환자를 두루 접할 수 있었습니다. 대부분 시골에는 노인 인구가 많이 거주하죠. 그런 분들의 병을 치료하려면 모든 면에서 치료과정을 단순화시켜야 합니다. 특히 귀가 어두운 분들에게는 병에 대해 알기 쉽게, 그리고 선명하게, 또 그들에게 익숙한 언어로 말하고 설명하는 법을 알아야 합니다.

시골 사람들은 웬만한 통증은 그냥 참고 지냅니다. 통증이 매우 심하게 진행되어야 병원을 찾고, 통증이 극에 달하지 않으면 어지간해서는 수술을 받지 않습니다. 수술을 받을 정도가 되면 병소(病巢)가 너무 나빠져서 숙련된 의사가 아니라면 수술하기가 무척 어렵습니다. 병소의 정상 모양이 다 망가져 있어 수술할 때 어디가 어딘지 구분이 잘 안 됩니다. 처음에는 저도 그런 환자들의 수술이 어려워 수술 도중 예기치 않은 상황에 당황하였으나 나중에는 적응이 되어 그다지 스트레스를 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시골은 의료 환경이 도시보다 아주 열악합니다. 병원시설도 도시에 비해 상당히 떨어져 있고, 병원 자체도 적습니다. 좁은 시골에 전문 분야별로 의사가 다 있는 것도 아니어서 의사 혼자 여러 분야의 환자들을 다 진료해야 합니다. 그렇게 진료하다 보니 질병과 환자에 대한 이해 역시 더 깊어지게 되었습니다.

시골에서는 일하다 다치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환자들이 응급실로 많이 옵니다. 다쳐도 아주 험악하게 다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러다 보니 사실은 도시보다 시골에 의사가 더 많이 필요할 것이라 생각됩니다. 그런데도 우리 의사들은 도시에 더 편중된 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정말 실력있는 의사들이 일정 기간 시골에 근무해서 의사 자신에게나 시골 주민들에게나 모두 유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제가 고성에 있을 때 어느날 아침, 첫 번째로 접수한 할머니 한 분이 손에 까만 봉지를 들고 내가 병원에 출근하기도 전에 진료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 봉지 안에 든 것은 삶은 고구마였어요. 그 할머니는 극심한 허리 통증을 호소하며 보름 이상을 집에서 견디다가 도저히 참지 못해 수술을 받으러 온 환자였습니다. 저는 아침에 서둘러 집을 나서는 바람에 끼니를 거르는 경우가 많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 싶어서 감사하는 마음으로 그 고구마를 받아들고 아주 맛있게 먹었습니다. 그리고 나서 마음이 흐믓해졌습니다.

삶은 고구마는 화려하고 값비싼 선물은 아니지만 할머니의 정성과 고마움이 담긴 귀중한 마음의 표시임에 틀림 없습니다. 시골은 그렇습니다. 한 번씩 환자가 없는 때에는 진료실 의자에 몸을 기대고 앉아 눈을 감으면 시골 병원에서 근무할 때 겪었던 일들이 떠오릅니다.


2014. 02. 04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