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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다리가 불편해요? 그럼 신경과로 오세요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6-08-23 (화) 11:30 조회 : 866


[주재형 박원욱병원 신경과 원장]

< 다리가 불편해요? 그럼 신경과로 오세요 >

신경외과 전문의로 진료를 본 지 거의 20년. 대학병원 전공의 시절과 신경과 전문 병원 근무 땐 주로 급성기 뇌졸중 환자를 비롯 뇌전증, 파킨슨병, 뇌수막염 등 흔치 않은 질병들을 진료했다. 지금의 근무지는 정형외과 전문 병원. 이곳에서 오랜 기간 일을 하다 보니 두통, 어지럼증, 뇌졸중, 치매 등 본래의 신경과 전문영역의 환자들보다는 조금 다른 증상을 호소하는 환자들을 많이 접하게 된다.

이들의 불편한 증세는 대략 다음과 같다. "수술을 했는데도 왜 이렇게 다리에 힘이 없죠", "다리가 너무 무거워 걸음을 걷기 힘들어요", "혈액순환이 안 되는지 다리가 너무 아프고 저려 잠을 못 자겠어요", " 자다가 다리에 쥐가 나 잠을 설쳐요" 등등.

이런 환자들은 잘못된 자가 진단으로 혈액순환제를 복용하고 있든가 아니면 척추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해 허리나 척추 등에 대한 치료만 해온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랜 기간 여러 환자를 만나왔지만 여전히 문진과 신경학적 진찰만으로 증상의 원인에 대한 정확한 진단을 내리기란 사실 쉬운 과정은 아니다. 진료를 시작하게 되면 여러 가지 검사 자료를 분석, 확인하고 다시 문진을 한 후 침대에 눕게 하여 신경학적 진찰을 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이미 상당한 시간이 소요된다.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는 '30분 대기 5분 진료'를 거꾸로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하여튼 대부분의 환자들은 이런 진료에 만족하는 듯하다. 신경과 전문의로서 개인적으로 기분 좋고 보람 있는 경우가 있는데, 그건 이처럼 진찰하고 나서 환자의 병명이 곧바로 머릿속에 딱 떠오르는 것이다.

전문 분야가 아니면 의사들도 잘 모르는 질병 중엔 신경과 전문의가 딱 봐서 알 수 있는 것들이 더러 있다. 다리가 힘이 없거나 저리거나 걸음걸이가 불편한 증상들 중 중추신경성 척수질환, 말초신경질환, 근육병, 파킨슨병, 하지불안증후군 등은 신경과 전문의의 진찰만으로 진단할 수 있다. 그런 과정을 거쳐 새로운 진단을 받게 되고 전혀 다른 치료방법으로 증상이 호전되는 환자를 보면서 큰 보람을 느끼는 것은 개인적으로 매우 행복한 일이다.

하지만 좀 안타까운 점은 아직까지 신경과가 일반대중들에게 잘 알려진 진료과목이 아니어서 신경과 전문의의 진료를 받을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아직까지 신경정신과와 구별을 잘 하지 못하는 경우도 적지 않다. 이전의 신경정신과는 이제 정신건강의학과로 과목 이름이 바뀌었다.

앞서 예를 들었던 불편한 다리의 증상들을 갖고 있는 환자들이 신경과의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신경과를 좀 알려줬으면 좋겠다. 오늘도 나는 환자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여긴 신경외과가 아니고 신경정신과도 아니고 신경과입니다."


2016년 8월 23일 화요일
국제신문 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