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대 직장인 A 씨는 요즘 아침에 일어나기 힘들어 출근 때마다 곤욕을 치른다. 그는 회사 앞 카페에서 진한 커피로 몸을 깨우고서야 겨우 정신을 차린다. 오전 내내 비몽사몽 업무를 보다가 점심 뒤에야 정신을 차리지만, 이내 식곤증이 몰려와 또 커피로 오후를 버틴다. 보다 못한 아내에 이끌려 못 이기는 척 그는 우리 병원을 찾아왔다. 진료해 보니 그는 만성피로증후군 환자였다!
동의대한방병원 한방내과센터 손변우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동의대한방병원 제공
만성피로증후군의 자가진단법으로는 미국 질병 관리 본부(CDC)가 제시한 것이 널리 사용된다. 아래의 증상이 6개월 이상 지속되면 만성피로 증후군으로 볼 수 있다.
기억력 또는 집중력 감소 / 인후통 / 목 또는 겨드랑이의 임파선이 붓거나 아픔 / 근육통 / 다발성 관절통 / 평소와는 다른 새로운 두통 / 잠을 자고 일어나도 상쾌하지 않음 / 평소와는 달리 운동(혹은 힘들게 일하고 난) 후 24시간 이상 나타나는 심한 피로감…. 이 밖에도 감기에 잘 걸리고, 잘 낫지 않거나, 현기증을 느끼고, 식은땀이 나고, 음식을 먹으면 금방 배가 더부룩하고, 두통이나 수족냉증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피로하면 인체 각 기관의 기능이 떨어진다. 소화기관의 기능이 떨어지니 소화가 잘 안되고 배가 더부룩할 수 있다. 혈액순환이 충분히 되지 못하니 팔다리의 끝인 손발까지 체온이 전달되지 않아 수족냉증이 생길 수 있다. 뇌의 기능이 떨어지니 기억력 혹은 집중력이 감소한다. 여기서 주의 깊게 볼 것은 근육통과 관절통이다. 근육이 에너지를 쓰는 만큼 보충하지 못하니 관절 가동범위가 떨어지고, 노폐물이 생긴 만큼 제거해주지 못하니 염증물질이 축적돼 근육통 관절통이 생길 수 있다. 여기저기 쑤시고 아픈 것의 원인 중 하나가 바로 피로이다.
그렇다면 커피만으로는 해결되지 않는 피로, 어떻게 극복할 수 있을까. ‘잠이 보약’이고 ‘밥이 보약’이다. 필자가 환자들에 오랜 시간 공들여 설명하는 부분이다. 우리 모두 알지만, 바쁘다는 핑계로 놓치는 것이다. 피로가 풀리지 않고, 노폐물이 쌓이다 보면 우리가 아는 큰 병이 오게 된다.
산업재해 분야에서 유명한 ‘하인리히의 법칙’이 있다. 어떤 대형 사고가 발생하기 전, 같은 원인으로 수십 차례 경미한 사고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남을 뜻하는 통계적 법칙이다. 우리 몸도 마찬가지 같다. 중풍이라는 큰 병이 생기기 전에 대상포진, 안면마비 같은 수십 차례의 경미한 사고와 감기 몸살 근육통 관절통 피로감 같은 수백 번의 징후가 나타난다. 힘드니 쉬어달라는, 몸의 절박한 표현이다. 많은 질환이 만성 피로에서 오고, 휴식이 최고의 치료인 것을 모두 알지만, 바쁜 현대인은 자신의 몸을 돌볼 시간과 마음의 여유가 없다.
물론 한약이 도움이 될 수 있다. 한두 가지 성분이나 한약재의 배합으로 이뤄진 건강기능식품과 달리 한약은 몸의 현 상태에 딱 맞게 한의사가 처방하기에 좀 더 적극적인 방법이다. 여러 약재가 어우러져 몸의 회복을 적극적으로 돕는 것이다. 우리 몸이 보내는 피로의 증상들을 간과하지 않고 자신의 몸을 챙긴다면 큰 병을 예방할 수 있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