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요즘 현대인의 식탁을 떠올려보면 밀가루를 빼고 하루를 보내는 게 더 어렵다. 아침엔 빵이나 샌드위치, 점심엔 면이나 돈까스, 간식으로는 쿠키와 케이크…. 바쁘고 피곤한 하루 속에서 밀가루 음식은 빠르고 간편하다. 문제는 무심코 반복되는 선택이 몸에는 꽤 큰 부담이 된다는 점이다.
밀가루는 대부분 ‘정제 곡류’ 형태로 섭취된다. 곡식에서 껍질과 배아를 제거하고 전분 위주만 남긴 형태이다 보니 소화가 빠른 반면 혈당도 빠르게 오른다. 식후 졸음이 쏟아지거나 금방 다시 배가 고파지는 게 이런 이유에서다. 혈당이 급격히 올랐다가 떨어지는 과정이 반복되면 몸은 점점 더 자극적인 탄수화물을 찾게 된다. 장에서는 가스와 더부룩함이 잦아지고 염증 반응이 쉽게 생기기도 한다. 실제로 “밀가루를 먹고 나면 속이 불편한데도 자꾸 손이 간다”고 말하는 이가 많다.
이쯤 되면 흔히 말하는 ‘밀가루 중독’이라고 할 수 있다. 밀가루를 먹지 않으면 괜히 허전하고 집중이 안 되며 단 음식이 유독 당긴다. 식사 후 졸림, 오후만 되면 쏟아지는 피로, 얼굴이나 몸이 쉽게 붓는 증상도 자주 동반된다. 피부 트러블이나 장 트러블로 내원했다가 식습관을 정리해 보면, 밀가루 섭취 빈도가 많은 사례도 적지 않다. 빵이나 면에 중독된 젊은 여성 가운데 비만과 다이어트로 고민하는 이가 많다. 밀가루의 가장 큰 문제는 미각중독 유발자라는 점이다. 가장 강력하게 구미를 당기면서도 주위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밀가루 음식이다. 밀가루 음식을 과다하게 섭취하면(중독될 만큼) 몸 안의 자연스러운 혈당 조절시스템이 망가질 수 있다. 결국 혈액에 과도하게 혈당이 돌아다니게 된다. 이럴 때 당뇨와 고혈압 고지혈증 등 각종 성인병의 원인을 제공할 수도 있다.
그렇다면 밀가루를 끊으면 어떤 변화가 생길까. 처음 며칠은 힘들다. 두통이 생기거나 괜히 밀가루 음식이 더 당기는 느낌이 들 수 있다. 하지만 1∼2주만 지나도 반응이 달라진다. 아침에 덜 붓고 식후 졸림 현상이 줄어든다. 속이 편해지고 배변 리듬이 안정되는 경우도 많다. “머리가 맑아졌다”고 표현하는 이들도 있다. 이러한 현상은 탄수화물을 아예 끊은 것이 아니라 몸에 부담이 적은 형태로 바꿨을 때 나타나는 변화이다.
밀가루를 끊고 싶다면 무작정 참는 방식보다는 환경부터 바꾸는 게 좋다. 집에 빵이나 과자를 두지 않고 배고플 때 바로 먹을 수 있는 단백질이나 견과류를 준비해 두자. 밀가루가 특히 당기는 순간은 대부분 피곤하거나 스트레스가 쌓였을 때다. 그럴 땐 따뜻한 차 한 잔이나 잠깐의 휴식이 생각보다 도움이 된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건 밀가루를 먹었을 때와 끊었을 때 내 몸이 어떻게 달라지는지 직접 느껴보는 것이다.
밀가루를 끊어보라고 권하면 가장 많이 듣게 되는 말이 “그럼 뭘 먹어요?”이다. 하지만 막상 밀가루 섭취를 끊어보면 생각보다 불편하지 않다. 대신 속이 편해지고 몸이 덜 피곤해진다. 식습관은 의지가 아니라 경험으로 바뀐다. 하루 한 끼부터라도 밀가루 섭취를 하지말자. 붓기나 피로, 속의 편안함이 달라진다면 그게 바로 내 몸에 맞는 선택이다.
김주현 웅진한의원 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