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연희 제세한의원 센텀시티점 진료원장]
- 열증 아래로 내려가고 기혈 순환해줘야 -
유치원생까지 진료실에서 "스트레스를 받아 통 입맛이 없어요"라고 할 정도로 바야흐로 스트레스의 시대다. 성별 나이 직업을 따지지 않고 거의 모든 사람들이 크고 작은 스트레스를 겪으며 살아가고 있다.
스트레스와 분노, 짜증, 억울 등의 감정이 표출되지 못하고 장기간 억눌려 우울감과 함께 신체적 증상까지 나타나는 게 화병(火病)이다. 예전에는 주로 40대 이상의 중년 여성에게서 많이 발생했으나 최근에는 직장인과 학생들, 워킹맘, 노인들도 발병 대상이 되고 있다.
장삼이사들은 화병을 감정적 문제로 가벼이 여기는 경우가 많지만 한국표준질병사인표에 정식으로 등재돼 있고 미국 정신의학회의 질병 분류표에도 1995년 'Hwa-byung'으로 이름을 올렸다.
화병이 우울증과 크게 다른 점은 신체적 증상까지 동반된다는 것이다. 우울·불면·불안·초조·짜증·분노·의욕상실 등 정신적 증상 외에도 피로·두통·전신통·어지럼증과 함께 가슴이 답답하고 두근거리며 열이 가슴과 얼굴로 치밀어 오르고 빈맥·식욕부진·소화불량·구역감·목의 이물감·호흡곤란·손떨림·입마름 등의 신체적 증상이 나타날 수 있다.
한의학적으로 분노·우울·스트레스 등의 감정이 표출되지 못하고 억눌리면 체내 기의 순환이 막히고 체하게 된다. 이게 장기간 지속되면 표출되지 못한 심장의 울화(鬱火)가 신체에 여러 증상을 일으키는 것으로 보고 있다. 화(火)는 상승하는 성질이 있어 주로 머리와 가슴 등 상초(上焦)의 열증(熱症)으로 나타나므로 상초의 열을 아래로 내려주고 하초(下焦)의 수기(水氣)를 위로 끌어올려주는 수승화강(水昇火降) 치료법을 적용한다. 이러한 수승화강을 돕기 위해 스트레스 장기인 간의 기혈순환을 원활히 하여 꽉 막힌 기운을 흩어주는 소간해울(疎肝解鬱), 심장의 화를 꺼주고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는 청심사화(淸心瀉火), 물로 불을 끄듯 체내에 부족한 음기를 보충해 열을 내려주는 자음강화(滋陰降火) 등의 치료 원칙에 따라 다양한 한약 처방과 침 뜸 부항 요법을 사용하며 환자의 마음을 안정시키기 위한 상담치료를 병행한다.
화병을 예방하기 위해서는 평소 규칙적인 생활과 함께 산책, 등산, 자전거 타기, 노래교실 등 흥미와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취미생활을 하는 것이 스트레스에 대한 저항력을 키우는데 도움된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환자의 마음가짐. 스트레스를 억누르려고 지나치게 애쓰는 것은 되레 화병을 키울 수 있어 일상생활에서 그 감정을 인정하고 표현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의 감정을 나누고 이해해줄 수 있는 가족 친구 직장동료와 대화를 나누거나 전문의 상담을 받는 것도 바람직한 선택이다.
화병은 질병 초기에 치료를 시작해야 악화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적극적인 치료를 통해 신체 건강뿐 아니라 마음의 안정까지 찾을 수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노력하는 것이 우선 중요하다.
2015. 03. 17 국제신문 2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