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채윤 체담한방병원 진료과장]
- 몸이 건강해야 속병도 잘 풀 수 있어 -
화, 분노, 억울함 같은 부정적인 감정을 제대로 풀지 못하고 정신적, 육체적인 고통을 겪게 될 때 우리는 화병(火病)이 났다고 한다. 예전에는 주로 부인들이 저마다의 사정으로 생긴 속앓이 때문에 화병 증상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나 요즘은 화병 증상에 남녀노소 구분이 없어진 것 같다. 최근 프란치스코 교황의 방한과 영화 '명량'에 대한 사람들의 열광적인 반응을 보면서, 이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마음 속에 치유와 위로를 바라는 응어리 하나씩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화(火)라는 것은 태양의 따뜻함이고, 생명력을 주관하고, 만물을 살아있게 하며 사람을 움직이게 하는 기운이다. 하지만 사람의 욕심이나 감정이 지나치면 인체 '오장육부(五臟六腑)'의 화가 과하게 된다. 이처럼 지나친 화는 기뻐하고, 노여워하며 근심하고, 생각이 지나치고, 무서워하는 이른바 "궐양지화(厥陽之火)"가 되어 사람을 병들게 하고 생명력인 진액(腎水)을 메마르게 하여 결국 죽음에 이르게도 한다.
또 화가 지나치게 치성하게 되면 두통, 어지럼증, 비염, 안면 홍조, 탈모, 불면, 이명, 고혈압, 여드름, 만성 어깨통증, 소화불량 등 각종 증상이 나타난다. 열이 위로 치성하므로 아래는 차가워져서 다리 저림 및 시림, 자궁질환, 월경불순, 생리통, 발기부전, 성기능 감퇴, 발바닥 작열감, 하지 부종 등의 증상이 생기게 된다.
자연의 기운은 어느 한순간도 멈추는 법이 없다. 사람의 기운 또한 끊임없이 위·아래로 흘러야 하고, 인체의 화(火)와 수(水)는 서로 소통하면서 서로를 제어해야 한다. 이렇게 인체의 화와 수가 소통하는 이상적인 인체의 건강한 상태를 수승화강(水昇火降)이라고 한다. 즉 신장의 물 기운이 상초로 올라가 화가 치솟는 것을 제어하고, 심장의 불 기운은 밑으로 내려가 하초를 따뜻하게 함으로써 기운이 상·하로 막히는 데가 없이 흐르게 하여 심신의 안정과 건강을 도모하는 것이다. 고대 중국의 전설적인 명의인 편작도 '두한족열 복불만(頭汗足熱 腹不滿)'이라 하여 머리는 차갑게 하고 발은 따뜻하게 하고 배는 부르지 않게 하여 건강을 유지하라고 하였다.
화병은 환자 본인의 몸과 마음을 힘들게 할 뿐만 아니라 주위 가족 및 가까운 사람들까지도 지치고 상처받게 하는 경우가 많다. 마음을 다스린다는 것은 매우 힘든 일이다. 몸이 건강하면 마음의 상처도 빨리 치유가 되며, 보다 강한 마음을 갖게 된다.
체질에 맞는 섭생과 수승화강 약침요법 등을 이용한 적절한 치료로 몸 안의 수화(水火)를 잘 조절해 솟구치는 화와 분노를 잘 풀어내고 신수(腎水)를 잘 보전한다면 좀 더 여유롭고 너그러운 마음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2014. 09. 02 국제신문 1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