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동민 제세한의원 원장
한의원에서 환자분들에게 한약을 처방하다 보면 자주 듣는 질문 중 하나가 ‘한약 먹는 동안 커피를 마셔도 되느냐’는 것이다. 한국인의 1인당 커피 소비량(연평균 400잔 이상)이 세계 2위인 점을 볼 때 이런 질문을 자주 받는 것은 당연해 보인다. 결론부터 말하면 ‘그때 그때 다르다’고 할 수밖에 없다. 너무 무책임한 답변 아니냐고 할지 모르지만, 어쩔 수 없는 사실이다. 조금만 더 자세히 답변하자면 ‘어떤 체질인지, 어떤 커피인지에 따라 다르다’고 할 수 있겠다.
일단, 한의학적으로 커피의 효능이나 성질은 충분히 밝혀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한의학의 바이블 격인 ‘동의보감’에는 커피에 대한 내용이 없다. 동의보감이 편찬되던 시기에는 커피가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않았으니 당연하다. 중국 청대의 의학서에도 커피에 대한 내용은 그다지 많지 않다. 현대에서는 커피를 ‘대체로 성질이 평하며 무독한 것’으로 분석한다. 성질이 평하다는 것은 특별히 뜨겁거나 차갑지 않다는 뜻이다. 무독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양까지는 인체에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의미다. 그래서 건강한 사람은 하루 3잔 이하 커피는 특별히 문제가 되지 않는다. 다만, 커피에 함유된 카페인 성분이 불면을 일으킬 수 있으므로 수면장애가 있는 사람은 커피를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 또 카페인 성분은 강심 및 이뇨 작용도 있으므로 몸이 건조하거나 심혈관계 질환을 가진 환자라면 가급적 커피를 피하는 것이 좋다.
커피의 성질 중 가장 논란이 많으면서도 재미있는 부분은 한열의 구분이다. 한의학적으로 음식의 성질을 나눌 때는 한열을 가장 중요하게 본다. 즉 그 음식의 성질이 따뜻한지, 차가운지를 구분하는 것이다. 이는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기 위해서도 중요하다. 열이 많은 태양인, 소양인은 뜨거운 성질의 음식은 피하고 차가운 것을 먹는 것이 좋다. 반대로 몸이 차가워지기 쉬운 태음인, 소음인은 따뜻한 것을 많이 먹는 것이 좋다. ‘8체질 의학’에서도 따뜻한 성질인 인삼이나 생강의 경우 ‘열 체질’인 금양·토양 체질은 피하도록 하고 ‘한 체질’인 수양·수음 체질에게는 자주 섭취하도록 권한다.
그런데, 커피의 성질이 따뜻한지, 차가운지에 대해선 지금도 논쟁이 많다. 커피는 소변량을 늘려주는 이뇨작용이 있는데, 그런 작용이 있는 약물은 대체로 차가운 성질인 경우가 많다. 소변을 보는 과정에서 체내 열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반면, 커피의 카페인이 강심작용을 가지고 있고, 폴리페놀 성분이 혈전을 줄여주며 혈액순환을 돕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커피의 성질이 따뜻하다고 판단할 수도 있다. 실제로 추운 겨울에 따뜻한 카푸치노를 마시면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다. 반대로 여름에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마시면 몸이 시원해지는 것을 느낀다. 결론을 다시 말하면, 커피는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서 그 효과가 달라진다고 봐야 한다. 따뜻한 카푸치노와 시원한 아이스 아메리카노는 성질이 다른 셈이다. 기본적으로 커피 자체는 평이한 성질의 음식이라고 할 수 있다. 커피가 세계에서 가장 많이 소비되는 음료가 된 것 역시 커피의 무난함에서 시작된 것일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