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체 난임 40~50%는 남성 원인 - 성기능장애·유전 등 복합 작용 - 호르몬·약물로 정자 생산 촉진 - 흡연·과음 피하고 운동땐 효과
국내 난임 환자가 꾸준히 늘면서 난임은 더는 일부 부부만의 문제가 아니다. 최근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국내 난임 진단 부부는 25만 쌍을 넘어섰으며, 부부 7쌍 중 1쌍이 난임으로 어려움을 겪는 것으로 나타났다. 난임은 주로 여성의 문제로 인식되기 일쑤였지만, 지금은 남성의 요인이 절반 가까이 차지한다는 점에서 시각의 전환이 필요하다. 세화병원 이상찬 병원장의 도움말로 남성 난임 치료와 관련해 알아본다.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이 남성 난임에 관해 설명하고 있다. 세화병원 제공
■ 무정자증, 더는 ‘100% 난임’ 아니다
남성 난임은 정자의 수, 운동성, 형태에 문제가 있거나, 정자가 배출되는 경로에 이상이 있어 수정이 어려운 예를 뜻한다. 세계보건기구(WHO)에 따르면 전체 난임 원인의 40∼50%는 남성 측 요인에서 비롯된다. 최근 5년간 국내 남성 난임 환자는 꾸준히 증가세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 의하면 2024년 난임 시술을 받은 환자는 남성 7만3303명, 여성 8만7780명으로 나타났다. 이는 2019년 대비 큰 폭으로 늘어난 수치다. 특히 남성 환자가 전체의 45%에 달했다. 난임이 더는 여성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이상찬 세화병원 병원장은 “난임은 한쪽의 책임이 아니라 부부가 함께 겪는 질환이다. 이제는 남성도 적극적으로 검진과 치료에 나서야 한다”고 강조한다.
남성 난임은 단일 원인보다는 복합적인 문제에서 비롯되는 예가 많다. 대표적으로 고환에서 정자가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 정자 형성 장애, 정관·부고환·사정관 등이 막혀 정자가 배출되지 못하는 이동 통로의 이상, 정액의 양과 질이 떨어지는 정액 이상이 있다. 또 발기부전이나 사정 장애 같은 성기능 장애, 시상하부·뇌하수체·고환의 기능 이상에 의한 호르몬 불균형, 그리고 염색체 이상·항암치료·흡연·과음·환경호르몬 노출 등과 같은 유전적·환경적 요인도 주요 원인으로 꼽힌다.
특히 무정자증은 남성에 큰 심리적 압박을 주는 대표적 질환이다. 무정자증은 정액에 정자가 전혀 관찰되지 않는 상태로, 이동 통로가 막힌 폐쇄성 무정자증과 정자가 아예 생성되지 않는 비폐쇄성 무정자증으로 나뉜다. 최근에는 정밀 현미경 수술의 발달로 극소량의 정자라도 찾아내 임신 가능성을 높이는 사례가 는다. 이상찬 병원장은 “무정자증은 ‘100% 난임’으로 오해받지만, 조기 진단과 맞춤형 치료를 통해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질환이다. 환자가 낙담하지 않고 전문의를 찾아 정확한 원인을 규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남성 난임 진단의 출발점은 정액 검사다. 최소 2∼3일 금욕 후 시행하는 이 검사는 정자의 수, 운동성, 형태를 종합적으로 평가한다. 필요에 따라 호르몬 검사, 유전자·염색체 검사, 초음파, 고환 조직 검사 등이 추가된다. 최근에는 유전자 이상 여부를 확인하는 정밀검사가 보편화하면서 원인 규명과 맞춤형 치료 설계를 할 수 있다.
■ 약물, 수술, 보조생식술, 정자은행
남성 난임의 치료법은 원인에 따라 다양하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약물치료로, 호르몬 불균형이나 정자 운동성 저하가 있을 때 호르몬 제제나 약물을 통해 정자 생산을 촉진하고 질을 개선한다. 최근에는 항산화제를 활용해 정자의 손상을 줄이고, 정액 내 환경을 개선하는 치료도 병행한다.
더욱 구조적인 문제는 수술적 치료로 접근한다. 대표적으로 정계정맥류 절제술은 고환 주위의 혈관을 교정해 정자 생산을 돕는다. 정관이 막히거나 끊어진 경우 복원 수술 대신 고환이나 부고환에서 직접 정자를 채취해 인공수정이나 체외수정, 미세수정 등 보조생식술에 활용한다. 이러한 방식은 불필요한 복원술을 줄이고, 성공적으로 임신을 시도하는 효율적인 접근법으로 자리 잡았다.
자연적인 수정이 어렵다면 보조생식술을 적극적으로 사용한다. 정액을 정제해 자궁 안으로 주입하는 인공수정, 체외에서 수정란을 만든 뒤 자궁에 이식하는 체외수정, 단일 정자를 난자 안에 직접 주입하는 미세수정 등이 그것이다. 이러한 시술은 난임 치료 기술의 발전과 함께 성공률이 꾸준히 높아지고 있다.
이와 함께 생활습관 개선도 반드시 병행해야 한다. 흡연과 과음은 정자 건강을 떨어뜨리는 주요인이므로 금연·절주가 기본이고, 적정 체중 유지와 스트레스 관리, 규칙적인 운동, 균형 잡힌 식단이 정자의 질 향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준다.
폐쇄성 무정자증은 수술적 복원 대신 정자 직접 채취가 효과적이며, 비폐쇄성 무정자증은 호르몬 치료와 미세 수술을 통한 정자 채취가 핵심이다. 또 다른 치료가 효과를 보지 못했거나 유전적 요인으로 자녀 건강이 우려되는 경우, 비배우자 정자은행을 통한 임신도 선택지로 고려된다.
이상찬 병원장은 “난임 치료는 단기간 끝나지 않고 장기적인 과정일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심리적 부담이 크므로 전문가 상담과 정신적 지원이 필요하다. 조급해하지 말고 꾸준히 치료를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 특히 남성 난임 환자 비율이 빠르게 증가하는 만큼 사회적 편견을 줄이고, 국가적 차원에서 검사와 치료 지원을 확대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