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초반 A 씨는 최근 이유 없이 얼굴이 달아오르고 밤에 잠을 깊게 이루지 못하는 날이 잦아졌다. 낮에는 쉽게 피로해지고, 방금 하려던 일을 잊어버리는 일이 반복되면서 불안감도 커졌다. 여기에 화장실을 자주 찾게 되면서 장시간 외출을 꺼리게 됐다. 병원을 찾은 A 씨는 갱년기 증상이 이미 복합적으로 진행 중이라는 설명을 들었다.
갱년기(폐경 전후기)는 흔히 상열감(안면홍조)과 불면이 대표 증상으로 알려졌지만, 실제 임상 현장에서는 만성 피로, 건망증, 집중력 저하, 배뇨장애(빈뇨·요실금) 등 다양한 증상이 함께 나타나는 예가 많다. 최근 연구에서는 이러한 증상들이 호르몬 변화뿐만 아니라 자율신경계와 수면-피로-인지 기능의 상호작용 속에서 군집 형태로 나타나는 것으로 보고됐다. 이러한 증상들은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여성의 삶의 질을 크게 떨어뜨린다. 최수지 동의대한방병원 한방부인과 교수의 도움말로 여성의 갱년기와 조기관리 등에 관해 알아본다.
최수지 동의대한방병원 한방부인과 교수가 환자를 진료하고 있다. 동의대한방병원 제공
■피로와 건망증…초기의 신호들
많은 여성이 ‘요즘 유난히 피곤하다’, ‘자꾸 깜빡깜빡 한다’ 등의 증상을 단순한 스트레스나 과로로 여기지만, 전문가들은 이를 갱년기의 초기 신호로 인식하고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한다. 초기 단계에서 적절한 관리를 할수록 이후 나타나는 증상의 강도는 줄어들 수 있다. 최수지 교수는 “갱년기는 어느 날 갑자기 시작되는 게 아니라, 피로와 기억력 저하 같은 미묘한 변화로 서서히 진행된다. 이 시기를 놓치지 않고 관리하는 것이 중년 이후 건강의 핵심”이라고 강조한다.
최 교수는 여러 임상시험·비교연구를 통해 갱년기 여성의 피로, 안면홍조, 수면 장애 등에서 자하거 약침과 침 치료가 증상 완화와 연관된 결과를 보였음을 보고한 바 있다. 임상시험 결과에 의하면 안면홍조 및 갱년기 전반 증상에 태반약침과 침치료 모두 효과가 있었고, 장기적으로는 태반약침이 효과가 오래 지속하는 게 확인됐다. 따라서 증상의 정도에 따라 침치료나 약침치료 중 선택해 치료할 수 있다는 게 최 교수의 설명이다. 하지만 증상이 오래된 경우에는 치료 기간이 더 길어지고 힘들어지므로 초기 증상이 있을 때 건강관리를 하는 게 가장 중요하다.
■신허·혈허…증상의 핵심 기전들
한의학에서는 갱년기 증상의 근본 기전으로 ‘신허(腎虛)’와 ‘혈허(血虛)’를 중요하게 본다. 한의학에서 신(腎)은 생식과 노화, 호르몬 변화와 밀접한 장부로, 폐경 전후 기능이 저하되면 전신 피로와 인지 기능 저하가 먼저 나타날 수 있다. ‘혈허’는 뇌와 전신으로의 영양 공급이 충분하지 않은 상태로 건망증과 수면 장애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된다.
갱년기의 대표적 증상인 상열감의 경우 이러한 ‘신허’와 ‘혈허’의 결과로, 몸 속의 열 순환 균형이 깨져서 생긴다. 현대적으로는 폐경 전후 호르몬 변화와 자율신경계 조절 기능의 변화로 설명할 수 있다. 최 교수는 이를 ‘끓는 냄비’에 비유한다. 정혈이 소모된 갱년기 여성은 물이 졸아든 냄비와 같은 상태다. 끓는 냄비의 물이 고갈되면 열이 위로만 쏠리고 냄비가 펄펄 끓게 된다. 이는 단순히 불을 꺼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냄비 뚜껑을 열어주어 순환을 돕고, 부족한 물을 보충해줘야 한다. 신허를 보강하고 혈을 보충하는 한약, 순환을 돕는 침 치료, 기혈 흐름을 활성화하는 약침을 함께 활용하여 치료한다.
갱년기와 폐경 후 증상이지만, 많은 이가 밝히길 꺼리거나 가볍게 보는 게 비뇨생식기 증상이다. 대표적으로 질 건조와 빈뇨가 있다. 최 교수는 기대수명 증가에 따라 비뇨생식기 증상에 더욱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갱년기 초기부터 빈뇨 등의 증상이 나타날 수 있는데, 이를 초반에 잘 치료하는 것이 노후 삶의 질에 매우 중요하다.
■“갱년기는 적극 관리해야 할 문제”
빈뇨와 요실금은 폐경 후 많은 여성이 겪는 문제임에도 대부분 노화에 의한 자연스러운 현상으로 여기거나, 부끄럽다며 쉬쉬하는 예가 많다. 최 교수는 침 치료로도 충분히 갱년기 증상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권한다. 특히 폐경기 초기임에도 하루 8회 이상 소변을 보거나, 야간에 일어나 소변을 보기 시작했다면 침치료를 고려할 만하다.
한의치료는 단순히 한약과 침치료에 그치지 않는다. 약침, 매선침 등 다양한 치료법이 새롭게 개발돼 활용 중이다. 매선 치료는 녹는 실을 침치료와 함께 삽입하는 치료로, 침 치료 효과를 오래 유지하려는 방법이다. 개인의 증상과 선호도에 따라 다양한 치료 선택지가 있다는 얘기다. 최 교수는 “상열감이나 불면이 심해진 이후보다, 피로와 기억력 저하 단계에서부터 갱년기 증상을 관리하는 게 훨씬 효과적이다. 갱년기를 자연스러운 변화로만 넘기지 말고, 적극적으로 관리해야 할 건강 문제로 인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