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뇌, 방대한 시각정보 취사선택 - 수술 뒤 신경 적응과정 거쳐야 - 필터링 체계 붕괴 땐 사고 위험 - 고령자 혼잡시간 운전 자제를
류규원 누네빛안과 원장이 우리의 뇌가 시각적 정보를 취사선택해 처리하는 과정을 설명하고 있다. 누네빛안과 제공
우리는 세상을 눈으로 본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우리가 본다고 아는 것은 눈 자체만으로 보는 게 아니라, 눈을 통해 들어온 이미지를 뇌가 최종적으로 처리한 시각적 정보를 인식하는 것이다. 실제 눈으로 유입되는 세상의 이미지는 너무나 방대하므로 이를 단번에 다 받아들일 수는 없어 그중에서 우리에게 필요한 순으로 뇌가 취사선택해 받아들인다. 즉, 뇌가 이미지의 편집자 역할을 하면서 중요한 부분은 선명하게 더 각인시키고, 덜 중요한 부분은 흐릿하게 어느 정도 무시하게 하는 것이다. 이런 능력은 우리 뇌에서 흥분성 자극과 억제성 자극이 시소처럼 균형을 이루고 있기에 가능하다. 눈으로 받아들여 망막에 맺힌 수많은 시각정보 중 중요한 부분을 더 활성화시키고, 덜 중요한 부분은 일종의 잡음으로 처리해서 흐릿하게 해버리는 것이다. 우리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마주 오는 사람에 집중할 수 있는 이유는, 뇌가 주변의 가로수나 건물, 보도블록의 질감을 의도적으로 ‘억제’하고 있기 때문이다.
진료실에서 이러한 뇌의 선택과 집중을 통한 시각 적응 기전이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해나가는 데 얼마나 효율적인지 자주 실감한다. 노안 교정용 다초점 인공수정체 수술이 그 대표적인 예다. 수술 직후 환자들은 이처럼 이전과는 다르게 유입되는 시각정보에 대해 ‘겹쳐 보인다’거나 ‘뭔가 덜 선명하다’고 낯선 느낌이나 불편을 호소하기도 한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뇌는 새로운 광학 체계에 적응하기 시작한다. 상황에 필요한 신호만을 선택하고 불필요한 초점의 이미지는 무시하면서 조금이라도 유용한 시각을 경험하게끔 재구성하는 ‘신경 적응’ 과정을 거친다. 라식이나 스마일 수술 같은 각막 굴절 교정술 역시 비슷한 과정을 밟는다. 결국, 안과 의사가 하는 일은 눈이라는 하드웨어를 수리하는 것에 불과하고, 최종적인 시력의 완성은 환자의 뇌라는 소프트웨어가 스스로 균형을 찾아가는 과정에서 이뤄진다.
그런데 가끔 이 균형이 흔들릴 때가 있다.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 때 흔히 ‘눈에 뵈는 게 없다’고 표현한다. 정말 그럴 것이다. 분노가 극에 달해 뇌의 억제 회로가 마비되면 흥분이 과도하게 일어나며 뇌의 필터링 시스템이 붕괴된다. 이때 눈은 가장 크게 뜨고 있지만, 오히려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보지 못하는 ‘인지적 맹목’ 상태에 빠진다.
나이 많은 이들이 복잡한 거리에서 당황하는 이유도 뇌의 역할과 관계가 있다. 노화 때문에 뇌의 억제 기능이 약해지면, 중요한 신호와 주변의 소음이 뒤섞여 뇌에 과부하가 걸린다. 결국, ‘잘 본다는 것’은 무엇을 ‘보는지’만으로 결정되는 것이 아닌, 무엇을 ‘보지 않을지’의 과정이 도와주어야 하는 것이다.
고령층에서 이러한 시각적 정보의 취사선택이 점차 어려워질 때 가장 걱정되는 부분은 교통사고다. 눈앞의 신호, 옆 차의 움직임, 앞차의 속도, 갑자기 튀어나오는 오토바이, 건너려는 보행자, 비 오는 날의 반사된 불빛…. 한꺼번에 밀려오는 수많은 시각적 정보를 그때 그때 뇌는 선택해야 한다. 안전에 가장 중요한 부분을 우선 선택해야 하는데, 나이가 들면 이 선택이 조금씩 어려워질 수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는 게 쉽지 않겠지만, 가능한 한 덜 복잡한 시각정보가 노출될 때 운전하면서 뇌가 조금이라도 편집하기 쉬운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게 필요할 것 같다. 그래서 야간이나, 비 오는 날 또는 눈 오는 날, 퇴근시간대처럼 도로가 복잡한 시간대의 운전은 피할 수 있으면 피한다. 몸이 피곤한 날에는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것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