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이태원 중심가 해밀톤호텔 뒤편. 지하철 이태원역 1번 출구가 있는 대로와 연결되는 골목길이다. 길이 45m, 폭 4m에 불과하다. 좁은 데다 경사까지 심한 비탈 길이다. 핼러윈을 맞은 2022년 10월 29일 밤. 이곳에 10만 명 넘는 인파가 몰렸지만 현장 관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날 밤 10시께부터 여러 명이 깔려 있다는 신고가 소방당국에 잇따랐어도, 수많은 차량과 인파로 구조는 지연됐다. 결국 돌이킬 수 없는 참사로 이어졌다. 159명이 사망하고, 197명이 부상을 당했다. 대부분 사망자가 이 골목길에서 발견됐다. 사인은 ‘질식에 의한 심정지’. 급경사의 좁은 골목길에서 인파에 깔리고 뒤엉켜 압사로 이어졌다는 얘기다. SNS와 언론 등을 통해 알려진 이날 현장은 몇 줄의 글로 담을 수 없을 만큼 참혹했다.
‘이태원 참사’ 3년이 지났지만 지금도 우리 사회에 트라우마로 남아 있다. 언론 등을 통해 참사를 접한 일반 시민 절반 이상이 당시 ‘슬프고 괴로웠다’고 했다. 연세대와 성균관대 연구팀이 최근 발표한 ‘이태원 참사 간접적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조사 결과다. 조사는 지난해 3월 29일부터 4월 4일까지 만 20~39세 성인 600명을 대상으로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참사가 발생한 지 1년 반이나 지났으나, 여전히 사고에 대한 부정적 감정이 높게 나타난 것이다.
이 현장을 직접 겪은 소방대원들의 괴로움은 말로 표현할 수 없다. 당시 사고 현장에 투입된 소방관은 서울과 인천 경기 충북 충남 등에서 1316명. 소방청 PTSD 상담 실적에 따르면 2022년 10월 31일부터 2023년 9월 30일까지 이들 모두 긴급 심리 지원을 받았다. 이 중 142명이 심층 상담을 받았고, 병원 연계 진료를 받은 사람 역시 142명이었다. 하지만 이들에 대한 치유는 참사 직후 1년에 집중됐을 뿐이다.
최근 소방관 두 명이 이태원 참사 트라우마로 고통받다 유명을 달리했다. 인천서 10일간 실종됐다가 숨진 채 발견된 소방관은 고통스러운 기억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우울증을 앓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달 경남 고성에서 생을 마감한 다른 소방대원도 불안장애 등으로 고통받았다고 한다.
이재명 대통령은 “재난, 대형 사고 등에 투입된 대원들의 치유를 국가가 책임지겠다”고 했다. 소방당국도 이제서야 ‘이태원 참사’와 ‘제주항공 여객기 참사’ 현장에 투입된 3300명에 대해 후속 심리지원에 나서겠다고 했다. 만시지탄(晩時之歎). 고인의 명복을 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