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환자와 교감하는 시간 부족한 현실 씁쓸 >
[변장무 부산성소병원 유방외과 진료과장]
우리에게 익숙한 진료실의 풍경입니다. 환자가 진료실로 들어오고 인사를 나눈 후 의사는 환자가 어디가 어떻게 아픈지 또 언제부터 아팠는지 등의 병력을 묻고 듣습니다. 대화로 알 수 있는 정보들을 얻은 후엔 이학적 검사를 진행합니다.
이학적 검사란 의사의 손과 눈, 청각과 후각으로 환자를 검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배가 아픈 환자라면 배에 외관상 이상은 없는지 확인하고 청진기를 통해서 장음을 청취한 후에 손으로 만져 특이점이 없는지, 타진을 했을 때 통증 양상이 바뀌는지 등을 직접 보는 것이지요.
이렇게 우리에게 익숙한 이학적 검사는 기원전 400년경 히포크라테스가 인간의 몸과 병에 대해 과학적 접근을 시도한 이래 2500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병의 진단에 매우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환자가 의사에게 자기의 몸을 맡기는 이학적 검사는 단순한 진단의 수단일 뿐 아니라 환자와 의사 간의 감정적, 이성적 교감 상태를 말하는 라포르(rapport)를 형성하는데 매우 필요한 단계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학적 검사의 의미가 현대의 진료실에서는 점점 가벼워져 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먼저 진단용 의료기기들의 발전이 빠르게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의사가 눈과 손으로 직접 진찰해 파악할 수 있는 정보보다 훨씬 정확하고 많은 정보를 알려줍니다. 해서, 아직 어떤 의료기기도 100% 정확한 진단을 할 수 없습니다. 의사의 경험과 감각에 의한 진찰과 의료기기를 통한 진찰이 상호 보완적이어야 함에도 이학적 검사를 생략하는 경우가 생기는 것이지요.
둘째로 현재의 의료제도도 이학적 검사를 어렵게 합니다. 병원이 현 제도 아래서 이윤을 내자면 짧은 시간에 많은 환자를 대하는 경영방식을 선택할 수밖에 없습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조사에 따르면 2014년 대학병원의 평균 진료시간이 4.2분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 시간은 충분한 이학적 검사는 물론 의사와 환자 간의 신뢰관계 형성에도 턱없이 부족한 시간입니다. 여기서 더 나아가 앞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된다면 의사가 환자에 대한 이학적 검사를 시행할 기회조차 완전히 차단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면 이학적 검사라는 것은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리겠지요. 사람이 아니라 기계나 기계와 다를 바 없는 로봇이 사람을 진료하는 시대가 오는 것입니다.
진료는 사람이 사람을 돕고 치료하기 위해 행해지는 숭고한 행위입니다. 아무리 기술이 발전하고 진단용 기기들이 좋아져도 의사가 환자를 진단하기 위해 대화하고 몸을 관찰하며 쌓은 신뢰관계는 치료의 든든한 기반입니다. 아무리 좋은 어학기와 계산기가 많이 생겨도 선생님과 학생의 관계가 배움의 기본인 것처럼 말입니다.
이런 시점에 이학적 검사의 중요성은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2015년 10월 13일 화요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