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병선 부산마이크로병원 병원장]
10여 년 전 봉직의사로 근무할 때였다. 어느 날 병원으로 소포가 왔다. 얼마 전 손가락 접합수술을 받고 퇴원한 환자였다. 상자를 여는 순간 깜짝 놀랐다. 편지와 함께 종이학이 가득 들어있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좌절과 실망을 많이 했는데 잘 치료해 주셔서 희망을 갖고 살고 있어요. 선생님을 생각하며 종이학을 접기 시작했는데 1000마리쯤 접다 보니 이제 손가락에 힘이 생겼어요. 정말 고맙습니다." 제법 심하게 다쳐 아직 손을 사용하기 쉽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이런 걸 다 접었을까 하는 의아함과 종이학을 접느라 얼마나 힘들었을까 하는 생각이 교차됐다. 뿌듯한 보람과 함께 그 환자의 밝은 얼굴이 떠올랐다.
얼마 전 초등학교 저학년생이 우리 병원으로 옮겨왔다. 양발의 상처가 무척 심했다. 어른도 감당하기 힘들었을 법한 수차례의 수술을 잘 견뎌준 아이가 대견스러웠다. 수개월의 사투 끝에 다행히 치료가 잘 돼 아이는 걸어나갈 수 있었다. 퇴원하면서 아이가 준 편지는 아직도 간직하고 있다. "걸을 수 있게 해주셔서 고맙습니다. (중략) 치료할 때, 수술 후 마취 깰 때도 아팠지만 물리치료할 때가 가장 아팠어요. 하지만 중요한 건 과거가 아니라 현재와 미래라고 엄마가 말씀하셨어요. 맞는 것 같아요. 앞으로 저는 선생님처럼 훌륭한 의사가 될 거예요. 건강이 제일 중요하다는 것도 병원에서 깨달었어요. 선생님도 건강하세요." 다시 읽어도 눈시울이 뜨거워진다.
인터넷과 휴대폰의 발달로 편지를 받는 일이 거의 없지만 지금도 간혹 편지를 남기거나 작은 선물에 감사의 글을 보내오는 환자들이 있다. 그럴 때면 나는 참 행복한 사람이며 내가 이 길을 정말 잘 선택했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수부외과 의사로 산다는 것은 그리 녹록지가 않다. 우리나라는 아직도 외상환자가 많고 이들은 대개 응급상황이기 때문에 당직을 계속 서야 한다. 나에게 교육받고 나간 후배들이 제법 있지만 지금은 대부분 다른 분야에서 일하고 있다. 젊었을 땐 힘들어도 당직을 견뎌냈지만 평생을 응급과 당직 같은 근무를 하라고 하면 선뜻 그 길을 선택하기가 어려웠으리라. 특히 절단사고는 촌음을 다투는 일이라 밤늦도록 수술을 해야 하는 경우가 많아 수부외과 의사는 체력이 뒷받침돼야 할 수 있는 일이다. 의료분야의 3D 업종인 것이다.
이제 의료계도 수익이 별로 나지 않는 분야는 지원자들이 뚝 떨어지는 의료시장 왜곡이 심해지고 있다. 누군가는 해야 할 일이기에 정책입안자들이 그 점을 배려해 알아서 추진하리라 믿는다.
나는 거의 20년 가까이 응급 수술과 더불어 살아왔다. 앞으로도 그렇게 보낼 것이다. 때론 힘들어 그만둘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이 일에 대한 소중한 보람을 가르쳐 준 환자들이 있어 오늘도 응급 콜을 받고 응급실로 내려가고 있다.
2015월 5월 12일 국제신문 2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