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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료실에서] 포도 다이어트의 말로
글쓴이 : 메디클럽 날짜 : 2015-05-19 (화) 11:27 조회 : 941


[강경숙 웰니스병원 원장]

슬로우비디오를 보는 듯한 느린 걸음으로 진료실에 들어선 그녀는 머뭇거리며 앉지를 못하고 망설인다. 불편하면 서 있어도 상관없다고 하니 눈물을 글썽이며 너무 아파서 도저히 앉을 수가 없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제 밑이 빠질 것 같고 피도 나고 걷기도 힘들 지경이라며 어찌할 줄 몰라했다. 항문을 관찰해보니 해바라기꽃 모양처럼 치질이 심하게 부어 있고 항문이 조금 열려 있었다.  

치질이 부어 많이 아프겠다고 하자 그녀는 아픈 것보다 더 고통스러운 것이 항문에 변이 걸려 나오지도 들어가지도 않는 상태로 항문이 빠질것 같다며 관장을 해달라고 했다.  

일단 수지검진을 위해 젤을 묻혀 손가락을 항문에 밀어 넣으니 딱딱한 것이 변이라기보다 무슨 씨앗 같은 게 뭉쳐서 항문을 꽉 막아둔 것처럼 느껴졌다. "이렇게 돌덩이 같은 것이 항문을 막고 있으니 변이 나올 수가 없죠. 이 덩어리 변부터 좀 파내야겠습니다. 항문 점막이 손상되어 좀 쓰라리더라도 참으세요. 이 상태로는 관장을 하려 해도 약이 들어가지도 않습니다." 항문을 막고 있는 씨앗뭉치를 다 파내고 관장약을 넣어 관장을 시켰다. 배변 후 진료실에 돌아온 아가씨는 이제야 좀 살 것 같다며 한숨을 돌렸다. 그러면서 그간 사정을 털어놨다. "원래 변비가 좀 있었어요. 한 번씩 피가 나기도 했지만 그렇게 큰 문제는 없었어요. 실은 포도 다이어트를 한다고 포도만 4일째 먹었어요. 그런데 변비가 생겨 배는 아픈데 볼일은 안 봐지고 힘을 줄수록 핏물만 조금씩 흘러나오고 동시에 항문에 있던 치질도 커졌고 또 뭔가 큰 게 생겨 통증과 함께 앉을 수도 없게 됐지만 항문에 뭐가 꽉 막혀서 나오질 않아…"라고 말꼬리를 흐렸다. 결국 그는 몇 시간을 화장실에서 전쟁을 치루고 나서 인내의 한계를 느껴 병원을 찾게 된 것이었다.

치질이 심하게 부었고 통증도 만만찮은 데다 혈관마저 손상돼 출혈도 있고 하니 수술을 하는 것이 좋겠다고 권하니 바로 수술을 해달라고 했다. 수술 후 회진 때 아프지 않느냐고 물으니, 이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라며 수줍은 미소를 짓는다. 이제는 수분 섭취도 많이 하고 섬유질 음식을 많이 먹어야 한다고 하니 다시는 변비가 생기지 않도록 할 것이라 말했다. 그리곤 앞으론 절대 포도 다이어트 같은 것은 안 할 것이라고 했다.  

올바른 다이어트란 어떤 것일까. 일단은 몸의 노폐물이 잘 빠져 나갈 수 있도록 해주는 것이 올바른 다이어트이다. 그러니 충분한 수분과 섬유질을 섭취해 쾌변을 해야 다이어트에 성공할 수 있다. 몸의 노폐물을 빼주지 못한다면 몸 속에 독소가 누적돼 몸이 붓고 대사가 느려지니 지방이 분해 될 수 없는 것이다. 퇴원을 앞두고 그는 앞으론 막무가내로 살을 뺄 수 있다는 슬림 추구형 다이어트는 하지 않겠다며 모처럼 활짝 웃었다.


2015년 5월 19일 국제신문 24면